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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1.06 [책] 김영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네가잃어버린것을기억하라시칠리아에서온편지
카테고리 여행/기행 > 해외여행 > 유럽여행
지은이 김영하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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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나에게 주어졌던 일주일의 휴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기 전에 어디든 떠났다가 오고 싶었고.
비록 3박 4일 짧은 일정이지만 막무가내- 무리를 해서 여행 일정을 세웠다.

여행 안내 책자를 펴보고, 어디를 여행할건지,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와 같은 여행 계획을 짜기전에
가장 먼저 한일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지난 시간 이곳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이 여행에서 기억해 낼 수만 있다면.
그래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내어. 내가 다시 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실 그런 생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행 일정은 짧고 빡빡했으니까.




나는 유명인들이 '모든걸 다 버리고' 여행을 간다고 하는 식의 여행기를 믿지 않는다.
그들이 모든걸 다 버리지 않았다고 믿기에.
손미나 전 아나운서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여전히 저명한 인사들이고, 그들은 여전히 책을 쓸 수 있고, 여행기를 세상에 내 보일 수 있다.


내가 모든걸 다 버리고 여행을 다녀온 뒤엔 그래서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뒤에는,
난 무엇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모든걸 다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욕망과, 모든걸 다 버리고 난 뒤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동전의 양면같은 내 감정 때문에 나는 이런 책들의 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것일까.


지난 해, 교토를 여행하던 때에  들렀던 어느 유서깊은 사찰을 보고도 내가 감흥을 받지 못했던건, 그래서 '참 사진 찍기 좋은 장소'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건 내가 그들의 역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영하가 보고, 느끼고, 그려내는 시칠리아 이야기는 시칠리아의 오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신(神)들의 이야기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머릿속으로 지도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낯선 시칠리아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알게 된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의 그 말이. 정말 말 그대로 였던 것이다.


결국엔 여행을 다녀와서도 열흘이나 있다가 이 책을 다 읽게 되었다.
오늘 아침 트위터에서 이병률씨가 서른이 되기전에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고, 마흔이 되기전에 우리는 미친듯이 살아야 한다고 적어놓은 그 글이 마음에 들어 리트윗을 해 놓았다.
미친듯이 살아가는 서른 몇의 중턱쯤에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쓰러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도 이 책에서 김영하가 그랬듯, 모든걸 다 버리고 시간이 멈춰있는 유럽의 어느 도시를 떠돌아보고 싶다.
그때쯤에는 그를 더 이해할 수 있겠지.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줄 수 없는, 내 몸의 일부로 그런 풍경을 새길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올 수 있기를.

노토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묻는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300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p.240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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