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사회 문제를 반영한 책이 되어버렸다"던 박범신님의 말씀 때문인가,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비슷한 문제를 다뤘지만 조정래님의 <허수아비 춤>이 굉장히 남성적 느낌이라면 이 책은 참 여성스럽다. 이팝나무가 그려내는 이미지와 그 안의 사랑 이야기는 더욱 그런 느낌을 배가 시킨다.
<은교>를 읽을 때처럼 단숨이 쉬지않고 몰입해서 읽었다.
마음 한켠이 무너지고, 입 안이 씁쓸해지지만
이게 픽션이 아니라 결코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할것 없는,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의 현실이란걸 깨닫는 순간에는 숨이 턱 막힌다.
박범신은 끝내 여지를 남겨두었다.
사회가 변해주지는 못해도, 어떤 사람은 그 모든 '비지니스'를 멈추고, 진짜 사랑을 택할 수 있다는 여지를.
그렇게 남겨준 그 여지가 쓰레기더미 속에 피어난 꽃 한송이 처럼 느껴지는 책이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일찍이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 라고 말했다. 그 잠언이 갑자기 떠올랐다. 사진예술의 조류를 설명하던 노교수가, 현대에 들어와서 사진 예술은 완전히 자본의 감옥에 들어가고 남은 것은 사진을 빙자한 산업뿐이라고 설파하면서 인용했던 잠언이었다. 자본의 감옥에 들어간 것이 어디 사진예술뿐이겠는가. 정치가 들어가고 문화가 들어가고 사람들의 꿈과 이상도 다 그곳에 들어갔다. 눈앞에서 울고 있는 그녀도 일찍부터 그 감옥에 들어갔으며, 나 또한 이제 그 감옥에 수감되었다. p.70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오욕이 가득한 화류향(花柳巷)으로 나가는 어미들이 있는 유례없는 나라가 내 조국이고, 그 어미의 가죽 채찍질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세습되는 '귀족'들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오직 약육강식의 정글 속을 헤쳐나가는 전사로 길러지는 아이들의 나라가 내 조국이었다. 어머니는 조국이다, 라는 잠언이 떠올랐다. 꿈이 조국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잠의 어두운 터널에서 조차 이를 갈며 전사의 길을 가고 있는 정우의 얼굴엔, 그러나 차라리 '조국'이 없었다. p.137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오가와 이토 - <초초난난> (0) | 2011.03.28 |
---|---|
[책]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행운아> (0) | 2011.02.23 |
[책] 김중혁 <펭귄뉴스> (0) | 2011.02.10 |
[책] 신경숙 <리진> (0) | 2011.01.30 |
[작가와의 만남] 2011. 01. 20. 작가와 초콜릿 <박범신> (0) | 2011.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