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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20세기 말 나타난 21세기 상징 서태지와 안철수 
2008 09/23ㅣ위클리경향 792호 

문명사적 전환 보여준 ‘세기말 인물’ 


가수 서태지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은 1990년대에 이미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렸지만, 21세기를 상징하는 주체로 선정됐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가수 서태지와 안철수 의장은 이미 1990년대에 21세기적인 상징이 무엇인지 보여준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서태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을 통해 ‘난 알아요’라는 곡을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1996년 은퇴할 때까지 4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6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다. 서태지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로 100만 명이 넘는 팬클럽 회원이 그의 노래에 열광했다. 그는 10대의 우상이 됐다. 특히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같은 노래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성기완 음악평론가는 “서태지는 10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 있는 가요로 고급과 대중문화의 차이를 허물었다는 점에서 21세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드는 음악성도 21세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성기완 평론가의 설명이다. 상업성을 중시하는 주류 음악계에서 비주류적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성씨는 “긍정적으로 본다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물었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가수 서태지는 댄스와 힙합·랩·헤비메탈·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녹여 퓨전 음악을 선보였다. 이 역시 21세기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서태지를 21세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보았다면 개인보다는 그의 음악이 보여준 기존 질서 가치에 대한 전복, 부조리·반항의 미학이 그 전에는 볼 수 없었을뿐더러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씨는 “서태지라는 이름은 이미 보통명사화돼 21세기에도 제2의 서태지, 제3의 서태지가 등장할 정도로 서태지가 남긴 궤적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이사회의장은 서울대 의대 박사 과정 중이던 1988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인 V3를 만들었다. 
V3은 20년 동안 백신 프로그램의 보통명사가 됐다. 의대 교수까지 됐지만 1994년 군의관으로 제대한 후 그가 선택한 길은 벤처사업가였다. 그는 1995년 백신 프로그램을 만드는 안철수연구소를 차렸다. 안 의장은 이미 21세기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기업인으로서 그가 걸어간 길은 가시밭길이었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이 인정받는 고속도로를 닦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로그래머로서, 벤처기업인으로서 성공 모델을 만들었다. 1999년 안철수연구소는 전년 대비 4배 성장했고, 매출(수주 포함)이 100억 원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길을 닦은 것은 1990년대지만 21세기에 이르러 그의 선택이 열매를 맺은 셈이다. 안철수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장은 한 가지 전문성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것을 시도했다”면서 “이런 것이 21세기적 인물이 추구하는 성공적인 삶의 조건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 의장은 평소 웹2.0이 정보의 생산자와 수요자가 함께 참여하는 탈권위를 촉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 “안 의장은 이처럼 세상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가 오기 전에 앞서 나가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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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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