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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속의 별]신세대 마술사 이은결의 정신적 멘터 서태지

 

동아일보 | 2007.02.03 (토) 오전 4:43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1990년대에 10대였던 이들치고 ‘서태지 키드’가 아니었던 아이들이 과연 있을까.

그 시절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 중에 ‘교실이데아’를 크게 틀어놓고 다같이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며 “됐어, 됐어”를 따라 외쳐 보지 않은 아이들이 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느 날 홀연히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외치며 등장한 이후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나 역시 당연하게 ‘서태지 키드’가 됐다. 서태지의 음악은 이전까지 듣던 발라드류와는 차원이 달랐다. 세상에 이런 음악도 있을 수 있구나. 나는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져서 더 들을 수 없을 때까지 1집을 듣고 또 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2집 앨범이 나오자마자 내 주변의 ‘서태지의 아이들’은 당장 달려가서 샀지만, 나는 한동안 2집을 사지도, 노래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기도 한데, 나에겐 1집의 충격과 감동이 너무나 커서 행여 2집에서 실망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땐 워낙 성격이 소심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서태지가 좋았다.


‘컴백홈’이 수록된 4집은 개인적으로는 제일 소중하고 지금도 힘들 때면 생각나 찾아 듣는다. 4집이 어린 시절 한창 힘들 때 들었던 노래라 그런 것 같다. 4집이 나왔을 즈음, 우리 집안 형편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원래 내성적이던 내 성격은 조금씩 더 어두워졌고 그때 위로가 됐던 것은 서태지의 음악뿐이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은 돌연 은퇴를 발표했다. 그리고 나는 마술을 시작했다. 점점 더 내성적이 돼가는 나를 보다 못해 부모님은 마술로 이끌었다. 나는 마술에 흠뻑 빠져들었다. 서태지가 사라진 마음의 빈 공간을 마술이 채워줬다.

서태지는 내 또래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스타겠지만, 내겐 단순한 스타를 넘어 정신적 멘터였다.

고2 때 마술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당시 국내 최연소 마술사였다. 지금이야 국내 마술사들이 3000명쯤 된다지만, 당시에는 20명 남짓했다. 나로서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마술사로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서태지에게서 찾았다.

“대학에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던 서태지,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갖고 있는 서태지, 갑자기 등장해 가요계를 순식간에 바꿔 놓은 서태지….

대중은 익숙한 것에 관대하다. 새로운 것은 늘 마음의 장벽을 깨야 한다. 하지만 서태지는 랩과 힙합에서 록으로, 메탈로, 하드코어로 나아가며 새로운 음악, 새로운 패션,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의 새로움은 항상 대중에게 스며들었다. 마치 마술을 부리듯…. 서태지는 마술사는 아니지만 분명 마술피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었다. ‘이은결’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마술계의 정상에 서길 꿈꿨다.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마술이 있었으면 했다. 그의 음악에 내가 그랬듯이, 내 마술에 관객이 열광해 줬으면 했다.

서태지에게서 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배웠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 정신’이다.

언젠가 서태지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나왔다가 방송국에서 제재를 가하자 그 다음엔 스커트를 입고 나왔다. 그는 늘 그렇게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방송국의 염색 머리 출연 금지 규정도 결국 사라졌다. 그는 ‘안 되는 것’을 단지 ‘안 하고 있었던 것’으로 인식을 바꿔놓았다.

예전엔 마술이라고 하면 검은 모자를 쓰고 망토를 두르고 나온 마술사들이 음악에 맞춰 갖가지 마술을 주르륵 늘어놓는 퍼포먼스식이었다. 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내 마술 공연에 ‘콘서트’라고 이름 붙였다. 관객들은 삐죽삐죽 번개 머리를 한 신세대 마술사가 펼치는 팔러(parlor·말하면서 하는 마술) 형식의 마술과 일루전(큰 도구로 하는 마술) 같은 대형 마술 콘서트를 신선해했다. 그리고 마술 붐이 일었다. 어쩌면 서태지의 영향을 받은 나 같은 ‘서태지의 아이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악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듯 마술도 그렇다. 클로즈업 마술부터 스테이지, 일루전 마술까지 마술사마다 각자 자기의 장기와 전공 분야가 있다. 서태지는 마술사로 치면 단연 모든 마술 분야를 꿰뚫는 최고 마술사인 ‘마스터 머지션(Master Magician)’이다. 나도 ‘마스터 머지션’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과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는 내게 무척 중요한 해다. 이번 달에 나의 10년간 마술을 담은 ‘10주년 콘서트’ 전국투어를 하고 4월엔 드디어 마술쇼의 본고장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선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마술을 선보인다니. 먼 옛날 내겐 그저 꿈같은 일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의 라스베이거스 공연에 그를 초대하고 싶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워 온 수많은 ‘서태지의 아이들’ 중 한 명인 내가 당당히 세계적인 마술사가 되어 라스베이거스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그가 꼭 와서 봐 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가 흐뭇한 미소를 내게 보내 줬으면 좋겠다.

 

 

이은결 마술사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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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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