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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25 [책] 박범신 <은교>

[책] 박범신 <은교>

Book- 2010. 11. 25. 00:52
은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박범신 (문학동네, 2010년)
상세보기

인간의 욕망.
젊음의 끓어오름과 서투름.
나이듦의 완숙함과 서글픔.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인간의 가장 가운데에, 그러면서도 가장 낮은곳에 품고 있는 것은 욕망인 것인가.
그 밑바닥을 전부 다 뒤집어 보이며 일일이 적나라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문장력은 그 욕망과 사랑을, 실제 내 눈으로 보고있게끔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프롤로그 가장 마지막에 있던 그 문장처럼, 이 책은.

관능적이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라고 설파한 것은 명저 <팡세>를 남긴 파스칼이고, 사랑을 가리켜 '분별력 없는 광기'라고 한 것은 셰익스피어다. 사랑은 사회적 그릇이나 시간의 눈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 당신들의 그것도 알고 보면 미친, 변태적인 운명을 타고 났다고 말하고 싶지만, 뭐 상관없다. 당신들의 사랑은 당신들의 것일 뿐이니까.  -p.12


그렇다. 그 해 가을, 내 집에 하나의 움직이는 '등롱'이 들어왔다. 사실이다. 내 자의식에 인화된 사진 속 나의 집은 그애를 만나기 전까지 오로지 우중충한 무채색의 어둠에 싸여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허물어져가는 '어셔 가' 저택처럼. 그애가 들어오고, 비로소 내 집에 초롱이 켜졌다. 가을이 깊을 때까진 말 그대로 그애는 다만 꽃초롱, 혹은 등롱이었다. 그래서 나의 욕망은 비교적 양지바른 곳에 은거해 있었고, 특별히 포악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서 그애가 아래위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쓸고 닦는 것을, 보지 않으면서 언제나 다 보고 있었다. 그애가 움직이는 대로, 마치 어두운 동굴 속, 초롱불 하나가 오르락 내리락, 내 발 앞을 밝히는 것 같았고, 그 초롱을 따라 걸으면 발바닥까지 다 따뜻했다. 나는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말을 빌려, 자주 혼자 중얼거렸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이라고. p. 59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아름답게 만개한 꽃들이 청춘을 표상하고, 그것이 시들어 이윽고 꽃씨를 맺으면 그 굳은 씨앗이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이라는 씨앗은 수많은 기억을 고통스럽게 견디다가, 죽음을 통해 해체되어 마침내 땅이 되고 수액이 되고, 수액으로서 어리고 젊은 나무들의 잎 끝으로 가, 햇빛과 만나, 그 잎들을 살찌운다. 모든것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p.251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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