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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29 [책] 천명관 - <고령화 가족>
  2. 2012.03.25 [책] 천명관 - <나의 삼촌 브루스리>



고령화 가족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희대의 이야기꾼 천명관의 두 번째 장편소설!희대의 이야기꾼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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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식구들은 모두 즐거웠다. 나 또한 미연이 맞춰준 이태리제 양복을 입고 가족에게 둘러싸여 쑥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났더라면 한 편의 훈훈한 가족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 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p.45 






천명관의 소설이 늘 영화같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눈 앞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천명관의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 그의 소설이 나에게만 그런 느낌을 주었던건 아니었겠지.


경험상 영화와 소설, 두가지를 모두 즐기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둘 중 어느 한쪽에는 꼭 실망을 하게 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고령화 가족>은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령화 가족을 다시 펼쳐들었다가 이 문장의 아이러니에 웃음이 났다.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훈훈한 가족 영화가 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책이 덮이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 많은 시행착오와,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을 되풀이 하는 우리의 인생처럼.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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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예담 | 2012-02-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소룡이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짝퉁 인생!이 시대의 이야기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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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예담 | 2012-02-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시대의 이야기꾼 천명관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나의 삼촌 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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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의 생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우리가 감당하기에 늘 너무 벅차리라는 것을. 그래서 또 눈물이 나고 그 눈물이 마를 즈음에야 겨우 우리가 애초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나의 삼촌 브루스리 2> p.23



그것을 순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결코 뻔뻔스러움은 늘지 않아 아무 데도 선뜻 발을 담그지도 못하면서 늘 구원을 꿈꾸는 그 가난한 마음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갇혀 아무런 확신도 없이 늘 생의 언저리를 겉돌기만 하는 그 수줍음을?
p. 328



천명관의 소설은 정말 '재밌다'.

등장인물이 많이 나와도, 이야기가 길어져도, 영화를 보듯,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도록 하는 힘.

온 힘을 다해 매료되어 읽게하는 능력. 그래서 읽고 나면 좀 지치게 될 만큼.

'나의 삼촌 브루스리' 역시도, 예외는 아니였다. 두권짜리 책을 거의 하룻밤만에 다 읽었으니.

그리고, 

이 책 마지막에 씌여있던 천명관 작가님의 글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의 글을 꼭 읽으리라 생각했다. 



소설이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장 느리고 완곡한 형태일 것입니다. 

또한 소설을 읽는 동안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

비록 그것이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나는 언제나 나의 소설이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가 되길 원합니다. 그것은 생활의 방편이란 목적 이외에 내가 소설을 쓰는 거의 유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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