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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나를찾는전화벨이울리고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신경숙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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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고,'죽음'과, '상실'과 '성장' 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역시, 죽음이 있고, 상실이 있는 어느 청춘의 이야기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무겁고, 아팠다. 그들의 이야기에 묘한 기시감이 느껴져 고스란히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느꼈다. 이것은 언어의 차이일까. 배경의 차이일까. 작가의 차이일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들이 -그녀의 필명처럼- 어느 시대에도, 어느 장소에서도 통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이 이야기들은 그 암울했던 시대와, 이 삭막하고 어지러운 도시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분명하다.
"시위 안해도 되는 세상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옳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시위를 계속하면 우리도 시위좀 그만하라고 시위하겠다"는 꽃집 아주머니가 나오는 '그' 시대의 이야기. 그래서 더 아프다. 이 시대의 이야기는 나를 한없이 아프게 한다. 겪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신경숙의 이 소설을 처음엔 느리게 읽다가, 나중엔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몇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는데,
오래동안 마음이 저릿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의 상실감과 아픔 때문에 눈물이 날 것같은데, 눈물조차 흐르지 않을만큼 심장이 먹먹해졌다.
이 바스러질 것만 같은 주인공들이 안쓰러워, 나는 책을 읽다 가끔씩 흰 종이 위의 활자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책의 글자들을 쓰다듬으면 왠지 글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릴 것만같아 두렵기도 했다.

서툴지만 뜨겁고, 불명료하지만 끝없이 고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금만 더 고민해도 괜찮겠다고. 조금만 더 방황해도 괜찮겠다고. 
위로를 받는다. 
나도, 세월이 많이 흘러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겠지.
언.젠.가.는. 아주 힘센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을.잊.지.말.자.

-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들이네.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자들이기도 하지. 거대하게 불어난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란 말이네. 강물이 불어났다고 해서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법은 무엇이겠는가?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니었다. 윤교수의 목소리는 더욱 나직해지면서 힘이 가해졌다.

-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함께 아이를 강 저편으로 실어나르게. 뿐인가.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네. 여러분은 불어난 강물을 삿대로 짚고 강을 건네주는 크리스토프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전체이며 창조자들이기도 해. 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들이네.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p. 63







그렇게 알게 되는 것들은 그와 나 사이를 가깝게 할까, 멀어지게 할까?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비밀을 털어놓은 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소중했던 비밀이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다른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p.111-112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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