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신해철의쾌변독설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음악 > 대중음악 > 연예인이야기
지은이 신해철 (부엔리브로, 2008년)
상세보기


우리나라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근성 중의 하나가 자기 히어로를 중간에 내다 버리는 건데요.
자기 히어로를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를 버리는 거거든요.
10대 시절과 20대 초반까지 자기가 열광했던 히어로는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짓는 정체성이 되어버려요.
그런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보수 기득권층에 영합되어버리는 순간 자기 히어로도 같이 버린단 말입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자기 히어로를 끝까지 안 버리고 지키는 대표적인 나라들이 영국, 일본인데요.
그 나라 팬들이 그런 특질을 강하게 나타내죠. 한번 블랙사바스는 영원한 블랙사바스고, 한번 구와다 게이스케는 영원한 구와다 게이스케라고 하는 것이 그쪽 팬들의 태도구요. 우리나라 팬들은 20대 후반만 되면 '내가 10대 때 XXX이 좋아했었는데, 그땐 미쳤었지' 라고 합니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 되는 거잖아요. 별로 멋있어 보이지도 않구요.
제가 볼 때 우리나라 대중들은 여자는 결혼 적령기가 다가오면 - 결혼 적령기라는 단어 자체를 부인하지만- 남자는 군대에 갔다 오면 일제히 보수 기득권 층을 향해서 맹렬히 돌진하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사랑해왔던 모든 것을 내던져야만 거기에 골인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문화비를 사용하거나 예술에 관심을 갖거나 하면 내가 낙오되거나 도태되지 않을 까 하는, 어릴 때 받았던 협박이 다시 재폭발하는 겁니다. 잠복기를 거쳐서.
그 잠복기의 시작은 언제냐,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야, 이제 대학생이야. 나 한번 놀아줘도 돼'' 라고 잠시 풀어져 있다가 결혼 적령기와 군대 갔다 온 시점에 그 바이러스가 재폭발하면서 그 협박에 몸을 사리게 되는 데요. 그러면서 문화적인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낭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도 술 처먹을 돈과 시간은 언제든 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히어로를 중간에 내다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상은. 인간의 나약한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 우상이 더 이상 우상이 아닌 허상이 되는 건. 그 사람이 더 이상 나약하지 않고 더 이상 어리석지 않기 때문인가?
아직도 어린시절의 '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은 자신이 나약해보이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히어로를 허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스스로 현실적인, 똑똑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건가?

나는 신해철의 '자기 히어로를 버리는 일은 자신을 버리는 일' 이라는 말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한다.

분명 그 '히어로'들을 보고, 의지하고, 배웠던 지난 날들로 인하여 '나'라는 사람이 완성되었을 것인데.
그것을 모두 부인하면. 나 자신의 중심을 부인하는 일 밖에 더 되겠는가.
적어도 지나온 시간과, 그 때의 내 마음과, 그들에게 받았던 그 '어떤 것'에 대한.
인정과 존중은 필요하지 않을까.
보수 기득권층을 향하여 달려가는거야 본인 선택이겠지만.





Posted by [TK]시월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