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T-story/너와함께한시간속에서'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08.03.10 Naver <musician's choice> - 서태지 '나를 키운 록 앨범 BEST 5'
  2. 2008.01.25 서태지 토스카 광고
  3. 2007.12.03 서태지 15주년 기념 앨범.[&]
  4. 2007.08.19 t-MAP <서태지>

태지가 선택한 첫 번째 키워드 <꿈, 다짐> : 들국화의 1집 [camomile]

85년 학교 밴드를 결성하자마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의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들국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멤버 5명 모두가 우리 집으로 모여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행진'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연주하고 따라 부르다 배가 고프면 라면을 끓여먹고 또 연주하고. 그리고 밤이 깊어야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고 내일 또 있을 들국화 합주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당시 연주력의 한계에 도전하던 Metal 음악만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열혈 메탈 키드였던 내게 들국화는 더 큰 세상을 열어주었다. 들국화? 나는 이런 기운 빠지는 음악은 딱 질색인데. 근데 왜 어느덧 자꾸 카세트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있는 거지? 한 바퀴, 두 바퀴 테이프가 돌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요동치는 심장에 심히 난감해했다. 이럴 리 없는데. 이거 무슨 마약이야? ㅠ 

그 후 난생 처음으로 들국화의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고 음반으로도 벅찼던 그 소리들.. 전인권의 정제되지 않은 울림을 무려 라이브로 듣고 최성원의 섬세한 감성의 환청을 경험했다. 또 모든 멤버들이 두각을 보이며 만들어내는 하모니.. 진정한 밴드 음악이 거기 있었다! 호러물도 아닌데.. 두 시간 동안 소름 돋은 팔을 비비며 울고 웃다 돌아왔다. 내가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꿈같고 너무 감사하다. 방송을 타지 않고도 언더그라운드로부터 매니아층을 들끓게 해 주류로 올라와 폭발해버린 이 에너지는 이전 경험한 적 없는 들국화의 힘이었다. 최고로 멋졌다. 다 필요 없다! 음악이 좋으면 뭐든 가능하다! 라는 단순 진리를 체험했다. 

대한민국 100대 명반 1위는 완전 타당하다!! 만세!! 내 소년기에 음악의 꿈과 다짐을 준 아련하지만 뚜렷한 기억.. 이름도 예쁜 들국화.


서태지가 선택한 두 번째 키워드 <패기, 도전> : 시나위의 2집 [Down And Up]

들국화를 약 1년 정도 연습하고 연주 실력이 조금씩 늘어 메탈 음악을 조금씩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메탈 밴드 '시나위' 쿠궁~ 이름부터가 포스가 다르다.^^ 최초의 한국 메탈 음반 시나위의 1집도 물론 충격이었지만 완전히 세련된 2집은 외국의 밴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발매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동네 음반가게에서 LP를 사왔고 친구들과 함께 개봉을 했다. 더블 앨범은 아니지만 양쪽으로 열리는 패키지에 커다란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헉! 한국의 젊은 형아들의 카리스마에 눈이 동그래졌다. 음반을 처음으로 들으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멋지다! 이제 나 만약 외국 여행 가더라도 어깨 힘주고 다닐 수 있다! (여권도 없었지만 ㅋ) 

여전히 비교 대상이 없는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의 세련된 기타 리프와 깊은 솔로, 그리고 당시 한국의 록 보컬 이라면 '무조건 굵직한 목소리'라는 기존 개념은 신경 써본 적도 없는 듯한 김종서의 진보된 창법은 내 속의 신생 말초신경을 자극했고, 김민기와 강기영의 세련되고 강렬한 테크닉이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 젊은 패기의 음악은 강렬하고 진지했기에 진보적인 한국 최고의 메탈 음반을 탄생시켰다. 난 LP턴테이블 바늘이 마르고 닳도록 음반을 들으며 연주를 카피했다. 

그리고 그 무렵 백두산, H2O, 시나위의 합동 공연을 보러 간 일이 있었다. 모든 밴드들의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시나위의 무대.. 갑자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에 밀려 나는 정말 압사 당할 뻔했다. 당시 시나위의 인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 지금도 가끔 종서 형에게 따진다. 왜 그때 '해 저문 길에서'는 안 불렀어요? 그리고 정말 압사 당할 뻔했다고!! ^^;; 


서태지가 선택한 세 번째 키워드 <첨단, 미래, 노력> : Metallica의 [Master Of Puppets]

같은 시간대에 미래를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 그들의 창고엔 타임머신 같은 걸 숨겨두고 있던 것에 만 원 건다.. '메탈리카' 일단 밴드 명을 보라! 한번 해보자는 거지. ㅋ 용감성이 좋았다. 그런데 메탈리카를 처음 들었을 땐 사실 화가 났다. 어쩌라고!! 음.. 팔에 모터 따위를 장착한 게 틀림없어. 인간이 이렇게 빠르게 연주하는 건 불가능하지 후후..;; 그 후 몇 달 동안 내 팔에 쥐가 나는 것을 반복하고 나서야 메탈리카가 진짜로 연주한 것이라는 것을 조금 믿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공연 영상을 보니 음반보다 엄청 더 빨리 연주한다. ]OTL[ ) 

그들은 분명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음악을 처음 만들 때부터 기존의 틀을 싹 갈아 엎고 새로운 공법으로 음악의 집을 지었다. 새로운 설계는 물론 지구에 없는 첨단 재료와 접착제를 사용했다. 나는 그 집의 문을 찾는 것으로 며칠이 걸렸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경이로웠다. 누가 킥의 미들을 그리도 많이 쳐버리라 상상했겠는가. 누가 캐비넷 수십 대로 모은 기타의 음압을 녹음하는 무모한 시도를 했겠는가.

한계에 도전하는 열정과 첨단의 미래 음악을 미리 보여준, 설명하면 입만 아픈 사부 밴드 METALLICA.


서태지가 선택한 네 번째 키워드 <센스, 감성, 패션> : Motley Crue의 [Shout At The Devil]

'LA 메탈도 메탈이냐?', '꺄~ 락스타의 등장이다! 맛리크루~' 그 땐 머틀리 크루 좋아한다고 하면 음악 선배들에게 무시당했다. ㅠ 음악성 후지다고.. 그래도 내 심금을 쩌렁쩌렁 울려주는 걸 어떡하냐.. 난 기꺼이 팬이 되었고 꿋꿋하게 멋지다고 외쳤다.. LA 메탈의 기본 틀을 정립하고 또 그걸 그 끝까지 모든 걸 다 보여준 밴드다. 음악 자체가 패션이고 비주얼이다. 그리고 신명.. 한 마디로 '이보다 신날 수는 없다.' 그들은 패션 리더이자 악동으로 최고로 멋지게 80년대를 살았다. 짧고 굵게. 게다가 묘하게 천재가 맞다. ^^ 

갑갑하기만 했던 80년대 한국에서 자유를 넘어 방종(?)의 미학을 유쾌하게 맛보게 해준 밴드. 이후 많은 LA 메탈 밴드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을 초월했다. 현재까지도 미국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80년대 LA 메탈 음악이 있다면 십중팔구 머틀리 크루일 것이다. 자랑이지만.. 잇힝! 미국에서 머틀리 크루 (정규 멤버)의 공연을 본 꿈 같은 기회도 있었고 [02 ETPFEST] 에서는 타미 리를 초청해 그와 안아보는 평생 꿈을 이루기도 했다. 게다가 프리 허그다. 훗! 부럽더냐? ^^ 

즐겁고 센스 만점인 천재, 악동 밴드가 패셔너블 까지 해버리면 그루피가 넘쳐나는 진정한(?) 록 스타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도 말할 수 있다! 멋져부러! 맛리크루!


서태지가 선택한 다섯 번째 키워드 <가치관, 태도, 상상> : Pink Floyd의 [The Wall]

이들을 설명하려면 수백 가지의 단어를 열거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핑크 플로이드는 음악에 대한 태도와 상상력의 확장을 내게 선사했다. 난 '더 월'을 가장 좋아한다. 사실 당시 메탈 키드였던 나는 프로그레시브 록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냥 배 나오고 패기없는 아저씨들 음악? 정도로 알았으니.. 그러던 어느 날 요상한 비디오를 보았다. 심히 요상한 영화라 일단 끝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 봤지만. 다 보고 나니 무슨 내가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에 좀 두려웠다. 다음 날 무섭지만 또 봤다. 앗..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꽂혀버렸다. 핑크.. 플로이드? 아 맞다! 나 테이프도 갖고 있었지! 얼마 전 선배에게 테이프를 받아 듣고 '이럴 줄 알았어!' 하고 쳐 박아 둔.. ;;

영화로 먼저 그들을 접했지만 음반을 다시 들으며 그들의 진보적인 편곡 기법과 아트의 경지를 보여주는 듯한 다양한 연주와 보컬 멜로디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들의 오염되지 않은 강렬한 메시지는 다양하지만 결국 바로 '벽'이라는 단어로 모아진다. 나 역시 그 못되먹은 '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오늘까지도 그 고민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사실 당시에는 나도 저런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면 하는 꿈을 가끔씩 꾼 적이 있다. 가.끔.씩..! … 근데 시도도 못해봤다 ㅋ 핑크 플로이드는 아무나 하나.. ^^;;

'The Wall'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항상 길고 험한 감각의 여행을 다녀와 밥 겔도프와 같은 자세로 소파에 축 늘어져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현재까지 모든 장르를 초월하여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위대한 SUPER BAND 핑크 플로이드.


출처: 네이버뮤직 http://music.naver.com/todayMusic/index.nhn?startDate=20080310

Posted by [TK]시월애
|

1. 30" ver.



2. 15" ver.


3. 60" ver.


헉…태지 토스카 씨에프 대박이다….ㅠㅠ 토스카..그거 뭐 비싼가?-_-

자동차사면 태지 브로마이드 주나요 ㅋㅋㅋㅋ


Posted by [TK]시월애
|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일이 없었다.

먹고싶은 것도 없었고 꾸고 싶은 꿈도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보고싶은 사람도 없었다.

세상은 텅 비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해나 달이 뻥 뚫린 구멍처럼 보였다.

그 안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 아무도 모르는 세계로 옮겨가고 싶었다.

<황경신> -나는 하나의 레몬이었다-

 

이런 앨범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상상이나 해볼 수 있었을까.

15년전 내가 그렇게 어리고 어리던 시절에.

어린 소녀였던 나는 황경신씨의 저 글귀에서처럼,

아무런 소망도, 아무런 꿈도, 아무런 즐거움도 없었다.

 

그 때 나는 그를 만났다.

그리고 세상은 흑백에서 컬러가 되었고,

나는 소리를 듣고싶은 소망이 생겼고,

무엇을 기다리며, 희망이 생겼고, 즐거움이 생겼다.

꿈을 꾸고 싶었고, 그가 보고싶어졌다.

그 모든 세월의 흔적이 담겨있는 그의 앨범.

 

지난 모든, 추억 가득한,

아련해지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나는 앞으로 듣게 될 그의 음악에 마음 들뜨고 설레여진다.

이 믿음은,

이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내 삶에 온기를 불어넣어준

내 피를 따뜻하게 만들어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

고마워...


Posted by [TK]시월애
|

강명석씨가 지금의 텐아시아로 옮기기 전에 매거진T에서 편집 위원장을 하고 있을 때 작성했던 티맵.

티맵의 첫번째 주자는 역시(!) 서태지였다.

강명석씨는 꽤 오래전에 김진성씨와 같이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아무도 없는가> 라는 책을 썼던 분이다.

(아, 그리고 <서태지를 읽으면 문화가 보인다?!> 이런 책도 쓰셨던 듯-

어린시절 그 책을 정독했을 때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더랬다.

정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어떤 이의 음악을 들어도, 그만큼 그 노래를 -어쩌면 그 음악을 만든 당사자보다 더-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 이후로도 꽤 많은 서태지의 음악을(혹은 그가 갖고 있는 어떤 문화적 컬러든 간에-) 활자로 적어낸 책을 많이 보았지만. 그만한 글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이제 많이 흘러, 강명석씨는 대중음악 전체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간간히- 그가 태지에 대해 하는 리뷰를 찾아서 읽어본다.

직업상 이제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야 할테고, 어쩌면 이젠 서태지의 음악을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그가 오래오래 태지의 음악을 좋아해주길 바라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나에게 그런 문화적 충격을 주었던 그가- 이제 그렇고 그런 기자가 되었다면 좀 서글플 것 같아서.:)






서태지 : 본명 정현철. 직업 뮤지션. 1986년 그룹 하늘벽으로 데뷔, 이후 활화산과 그룹 시나위를 거쳐 서태지와 아이들 결성. 현재는 솔로 활동중이며 서태지 컴퍼니의 대표로 있음. 서태지라는 이름은 그룹 엑스 재팬 (X-JAPAN)의 베이시스트 타이지와 영어 스펠링(Taiji)이 같은데다 서태지의 시나위시절 포지션이 베이스여서 타이지의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음. 서태지의 7집앨범에 참여한 편곡자 이나(INA), 기타리스트 카즈(KAZ), 엔지니어 에릭웨스트폴(Eric Westfall)은 모두 엑스재팬의 기타리스트 히데(Hide)와 함께 작업한 사람들.


전영록 : 1992년 4월 11일 MBC <TV특종연예>에 출연한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새롭고 다 좋은데, 나쁜 말 안하겠다. 평은 우리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하는 거니까.”라고 말한 선배 가수. 그 시청자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앨범을 130만장 정도 팔아줬다.

지단 : 1972년 2월 21일생인 서태지와 동갑인 축구 선수.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 주영훈과 박진영도 동갑. 그러나 서태지는 이런 얼굴을 하고있다. 장래 희망은 장난감 가게 하나 내는 것.

뉴키즈 온 더 블록 :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발표 당시 잡지 <TV저널>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뉴키즈 뛰어 넘는다“는 제목의 표지를 만들게 했던 첫 번째 라이벌. 이후 현진영, 듀스, 신해철, 신승훈, 김건모, 잼, 룰라, 패닉, HOT, 김사랑 등이 서태지의 라이벌로 불림. HOT의 이재원은 PC통신 하이텔의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 <또래네>의 회원이었고, 'hammer57'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한 김진표는 하이텔에서 흑인음악에 대한 글들을 올려 유명세를 타기도 했었음. 포털 사이트의 지식 검색에서는 ”서태지와 동방신기 중 누가 더 위대한가요?“라는 질문도 올라옴.

노 브레인 : 서태지가 ‘울트라맨이야’를 발표했을 당시 안티 서태지 운동을 일으킨 인디 밴드. 최근에는 영화 <라디오 스타>에 출연. 또 전인권은 서태지의 솔로 컴백 공연에 대해 ‘립싱크’라 말해 논란이 일었고, 박완규는 “서태지가 상업주의에 젖었다.”는 발언을 했으며, ‘아시나요’를 부르던 당시의 조성모 기획사는 “서태지만 한 시간 동안 방송에 출연하는 건 특혜”라고 주장하기도. 이밖에 서태지는 사탄설, 복장규제, 표절설, ‘시대유감’의 가사 삭제 등의 논란에 올랐고, 솔로 컴백 전 잠적기간 동안에는 결혼설, 임신설(;;) 등도 있었음.

조셉 한(Joseph Hahn) : 현재 전 세계적으로 2000만장의 앨범을 판매한 그룹 린킨파크의 DJ. 그는 미국의 한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만난 서태지로부터 ‘짐꾼’으로 오인 받아 팁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밖에 서태지는 콘(Korn)과 함께 공연했고, 일본 그룹 드래곤 애쉬(Dragon ash)는 서태지를 자신의 내한공연에 초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밀리 바닐리, 테스타먼트, 메탈리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비스티 보이즈, 스매싱 펌킨스, 마이클 잭슨 등의 음악과 유사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한국보다는 외국 뮤지션들과 친한 듯.

양현석 : 서태지가 다른 가수의 앨범에 곡을 준 두 명 중 한 명. 처음이자 마지막 솔로 앨범의 ‘아무도 안 믿어’를 서태지가 작곡. 이후 서태지는 양현석이 제작한 가수 휘성을 유망한 신인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다른 한 명의 가수는 원미연의 ‘그대 내 곁으로’. 이밖에 서태지는 시나위 시절의 동료 김종서 2집 앨범의 노래 ‘어머니의 노래’에서 랩을 했다. 현재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를 부른 세븐의 소속사 사장. 김종서의 ‘겨울비’는 ‘불후의 명곡’에 오르기도.

: 서태지의 앨범에는 늘 ‘Special thanks to'에 팬이 등장한다. 하긴, 시험공부 하며 줄서서 공연 봐, 사전심의 제도 철폐 서명 운동해, 활동 4년 동안 안 해도 공항 앞에서 몇 천 명이 노란 손수건 들고 기다려, 아이 낳으면 아이에게 서태지 음악 틀어줘.... 안 고마우면 그게 이상할 듯.

김종서 : 김종서 : 최근 서태지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이름이 같이 뜨는 가수. 서태지의 '절친'. 6월 6일 MBC <황금어장>에서 서태지와 전화 시도하는 장면이 예고로 나옴. 그러나 알고 보니 이것은 <황금어장>의 낚시였다. 하긴, 가장 친한 친구가 '이 시대 마지막 신비주의'를 안 지켜주면 누가 지키랴.

Who is Next?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뒤 HOT를 제작, 서태지와 아이들과 어딘가 비슷하지만 ‘뭔가 많이 다른’ 시대를 연 이수만 현 SM엔터테인먼트 이사.

Posted by [TK]시월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