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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보고 온 뒤, 후기를 쓰고 싶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내 망설여졌다.
내 짧은 어휘로 뭔가 글을 썼다간. 어제의 그 커다란 감동이, 자칫 사라져버릴까. 아무것도 아닌 상투적인 단어의 나열이 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 감정은 기록해 두고 싶다. 

펜더기타는 전설적인 음악을 남긴 음악인을 선정해 단 한 명의 마스터 빌더(Master Builder)가 만든 맞춤형 기타를 헌정하는 ‘펜더 커스텀 숍 트리뷰트 시리즈(Fender Custom Shop Tribute Series)’를 진행하고 있고, 신중현님이 이번에 그 대상이 되어, 기타를 헌정받게 되었다. 

아시아 최초.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잉베이 맘스틴, 스티비 레이본, 에디 반 헤일런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감탄사가 절로나는. 그런 세계 최고의 뮤지션들에 이어. '그 엄청나다는 기타'를 헌정받았고. "이 기타 소리를 모두에게 들려주는 것이 나의 의무다"라며. 생애 마지막 전국투어 공연을 시작했다. 이 일흔 두살의 노익장은.

당연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엄청나다는 기타'가, 그걸 연주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손에서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듣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예매가 쉬웠다. 좋은 자리를 예매했고. 공연 하루 전까지. 표가 너무 팔리지 않았다며. '봄여름가을겨울' '이적' 과 같은 후배 뮤지션들이 트위터에서 '한국음악을 살려야 한다'며 무한 RT를 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공연이 이런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의 홍보가 아니면 안되는 걸까. 신중현님은 이 공연이 '수익'을 위한 공연은 아니라고 했다. 절대로. 가격이 비싸다거나 하는 공연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런 노력끝에 세종문화회관은 그의 연주를 보러 온 나와 같은 젊은 사람들, 그와 시대를 함께한 사람들. 홍대 앞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디 뮤지션들. 잘 알려진 굵직한 유명 뮤지션들로 가득 메워지게 되었다. 

'빗속의 여인'을 시작으로 한 공연은 화려한 무대 장치도, 조명도, 무엇도 없다. 
흰 옷을 입고 계신 신중현님의 검은색 펜더기타 때문일까. 수묵화같은 느낌의 무대. 열정적인 기타 연주와 노래를 부르는 신중현님, 그리고 묵묵히 기타를 치고 있었던 신대철님,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님은 건반을 치고 있었고, 서울전자음악단 멤버 김정욱씨가 베이스를 쳤고, 신중현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드러머, 유상원씨가 드럼을 맡아. 그저 멤버들만이 무대에서 빛이 날뿐. 무대는 여백이 많다. 

그분이 만들었다는 음악을 하나하나 들으며, 너무나 좋은 펜더기타 소리를 감상하는 동안, 나는 심장이 욱죄여오며 뭉클해진다. 그의 음악은 시대와 함께 했고. 온 시대를 녹여 여기까지 흘러 왔구나. 싶다. 음악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 세월의 무게가. 시대의 물결이 순식간에 나를 덮쳐온다. 그래서. 목이 따가워진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 옆자리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내내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그 사정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1부는 그가 만든 유명한 곡들을 신중현의 방식으로 편곡하여, 재탄생하여 불려진다. 세상에서 그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그의 아들들과의 합주여서일까. 그 합주도 너무 좋다. 특히. (예전, 김완선이 불렀던) '리듬속에 그 춤을'에서 1부 마지막 곡인 '미인'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신윤철님의 기타 솔로는 온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좋았다. 길지 않았던 순간이었지만. 진짜 시간이 멈춘듯한 아름다운 찰나. (나중에 미투데이에서 신윤철님께 너무 좋았다고 말씀드리자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하셨다 ㅎ)

한국형 락. 2부는 김삿갓의 시를 가사로 했던 노래들을 부른다. 그의 그 음악에 어울리는 가사는 어쩌면 김삿갓의 시들이 아니고는 안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국형 락' 이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실되고, 어쩐지 투박하지만 깊이있고. 내가 들었던 그 어떤 락보다 유니크한. 우리네 정서다. 댄스음악 작곡부터 사이키델릭한 음악까지 하셨구나. 그의 음악적 욕심에 또 한번 놀란다. 

공연을 다 보고 나니'펜더 기타'라는 이름이 무에 그리 대순가 싶다. 그 펜더가 그런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게되어 다행이라고. 기타가 연주자에게 정말 고마워해야지 싶다고. 생각된다. 

조곤조곤 살아온 지난 날들의 이야기를 해주시며, 온 생애를 걸친 음악을 들려주시는 신중현님. 그 얼굴에 대가에게서만 느껴지는 평화로움과 여유가 감돈다. 온 생애를 다 바쳐 한 곳에 쏟아낸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을 짓는다. 

그분의 생애 마지막 공연을 보게 되어 다행스럽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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