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100723

Diary/2010 2010. 7. 23. 22:34
#1. 아침, 출근길에 꼬맹이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주륵 주륵 오는 비를 다 맞고 있던 녀석은 털이 몽땅 젖어버렸는데 눈망울이 참 예뻤다. 목줄을 하고 있는걸 봐서 주인을 잃어버린 녀석인지, 주인이 내다 버린 녀석인지 아무튼 사람 손을 타던 녀석이란걸 알 수 있었다. 집을 찾는건지 계속 같은 횡단보도만 왔다갔다 거리는데 차도에서 너무 위태롭게 서 있길래 걱정이 되어 죽겠더라.

몇끼를 굶었던걸까.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걸까. 고여있는 빗물을 받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얼른 근처 가게에 들어가 소세지 하나를 사서 잘라 내밀었더니, 킁킁 냄새만 맡고 경계를 한다. 우리 가지 녀석이라면 벌써 달려들어 먹었을건데. 이 녀석은 사람을 좀 무서워 하는 것 같았다.

최대한 경계를 풀고, 자세를 낮추고 좀 먹이려고 해도 이녀석은 먹을 것도 없는 쓰레기통을 뒤질 뿐 내가 내미는 소세지는 결국 먹지 않았다. 이녀석과 있다간 오늘 있는 교육에 늦어버릴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되돌아 왔는데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저 녀석을 데리고 왔어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과, 또 하나는 '저렇게 사는게 더 행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어느쪽이 그 꼬맹이에게 더 좋은지는 모르겠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는게 안쓰럽기도 한데, 결국 데리고 와, 또 좁은 방안에서 외롭게 나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저 아이에겐 불행이 아닐까 싶었다.

어느쪽이든 맘이 편치 않은것은 사실이지만, 이내 잊어버려야지. 우리 가지도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그저, 그 꼬맹이가. 사람에게 다치지 않고, 차에 치이지 않고, 오래오래 자유롭게 살아주길 바랄 뿐.


#2. 요즘 여러가지 문제로 좀 (많이) 빈곤모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공연과, 책과, 음반 지름질은 멈추지 않고 있다. 문득, 알베르 카뮈의 "나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동시에 환희에 살았다" 는 말이 생각났다.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으면서 카뮈, 카프카, 헤세의 책에 미쳐있던 내 10대. 카뮈는 알제리에서 빈곤하게 살았고, 그 생활 덕분에 고통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고 가난한 이와 연대했다고 했다. 

어릴적엔 저 말이 너무 좋았다. 그럴수만 있다면- 가난하고 싶단 말이 아니라, 저만큼 환희에 차오르고 싶었다, 좋아하고, 꿈꿔왔던 일을 통해. 마음속에 꾹꾹 묻어놓고 꺼내지조차 않는 어린시절 그 꿈. 

여전히, 내가 그만큼 환희에 차오를 수 있는 일을 하게된다면 좀 가난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식은 아니다. 공연이나 음반을 소비하는 것 때문에 내가 궁핍해야 하는게 아니라. 어떤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의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저 말이 내 심장에 유효하다. 다행스럽다. 

'Diary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803  (0) 2010.08.04
100801  (0) 2010.08.01
100721  (0) 2010.07.21
100719.  (0) 2010.07.20
100717 - twitter & me2day.  (0) 2010.07.18
Posted by [TK]시월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