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가장왼쪽에서가장아래쪽까지B급좌파김규항이말하는이시대의진보와영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정치비평에세이
지은이 김규항 (알마, 2010년)
상세보기

지승호 : 영성은 교회와 어떤 매개 없이도 가능한 개인적 결단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김규항 : 물론이죠. 교회뿐 아니라 종교와도 필연적인 관련은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개념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적이라는 것과 종교는 다른 것입니다. 영성은 분명히 종교적인 태도죠. 그러나 실재하는 종교는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아요.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죠. 무신론자를 자처하지만 종교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요. 참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물질주의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도 많습니다. 옛사람들을 보면 종교 체제에 속하지 않고도 종교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우리 세대의 할머니 정도 되는 분들을 보면 대단히 종교적이잖아요. 나무고 바위고 세상 만물에 생명이나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건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한테 잘못하면 결국 벌 받는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자기 내면과 사회와 우주 만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나'라는 존재는 그런 구조 속에서 보면 '먼지처럼 보잘것없다'는 겸손, 이런 것들이 종교적인 태도입니다. 한국 사회를 보면 기독교인이 많아질수록 종교적인 사람은 줄고 있어요. 많은 수의 한국 교회가 섬기는 신은 하느님이 아니라 돈이니까. 아니라고들 하겠지만, '예수 믿으면 가난해진다'고 전도해봐요. 교회의 9할은 바로 문 닫죠.














인터뷰의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쓴 <예수전>을 읽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말을 해 줄것 같아서.
'종교적'인 것들이 좋아, 그래서 '종교'를 갖기 시작했는데 막상 '종교'는 그다지 '종교적'이 아님을 알았을 때의 그 배신감. 내가 어린시절 봤던 '종교'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어느 하나의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이 인터뷰를 읽고 떠올랐던 박완서님의 산문집 <호미>의 일부분.

유교적인 집안이라고 기도를 안 하는 건 아니다.
6.25때 북으로 끌려간 오빠의 생사를 모를 때 엄마는 새벽이고, 밤이고, 끼니때고 아무 데나 대고 빌고 또 빌었다.
부뚜막에 오빠의 밥그릇에다 밥을 담아놓고도 빌었고,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도 빌었고, 하늘 보고 북두칠성한테도 빌었다. 
까치가 짖으면 고마워서 까치한테도 두 손을 모았고, 까마귀가 짖으면 까마귀한테 삿대질을 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분이 이성을 잃으니 미친 사람 같아서 집안 식구를 불안하게 했다. 전쟁이 끝나고 엄마의 모든 정성은 무위로 돌아갔다. 엄마는 그 후 절에 다니시면서 마음을 달래시다가, 말년에는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셨다. 기도는 사람의 정신을 돌게 하는게 아니라 바로잡아주는 것이고, 바로잡는 다는 건 중심을 잡아주는 일이 아닐까. 종교의 다름은 그 중심에 누구를 세우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큰 기도는 잘 안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다고, 잗다란 기도는 잔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잗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 밖에. 기도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기도한다.

p.170-171 박완서 <호미 中- '그는 누구인가'에서>



Posted by [TK]시월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