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다시 펼쳐든 주말이었다.
서른 살 쯤에 이 책을 읽을 땐 그저 잘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했고, 좀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제 놀랍게도,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단편 하나하나, 등장 인물들의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과, 그리움에
내 마음이 모두 가닿는 것을 느꼈다.
2014년이 시작되던, 잠이 오지 않던 날 밤, 이 책에 실려있는 단편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를 다시 읽을 때만 해도, 이런 감정은 아니었다.
몇년 사이에 내가 달라진 것인지, 아님 김연수라는 작가에 완전히 적응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의 말에서 조금 힌트를 얻는다.
"그제야 이 소설들이 불꽃의 소설들, 전염의 소설들, 영향의 소설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를 쓰던 어느 새벽, 나는 인터넷으로 불타는 숭례문의 사진을 봤다. 내가 소설 속에다 쓰던 불꽃이 그대로 현실로 옮겨진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는 숭례문의 그 불꽃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았다.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이 책엔 몇번의 불꽃들이 나온다.
어쩌면 지금 내 마음속의 분노와 슬픔의 불꽃들을, 이 소설들과 주고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미신과 같은 생각이,
그래서 내 마음이 어딘가에 가닿았다는 생각이 문득 나도 들었다.
내게 그런일이 일어났다면 당신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마도 각자의 불꽃들이 외롭게 타오르던 한 시기.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건 부정의 문장도, 무엇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다. 우리의 얼굴이 서로 닮아간다는 걸 믿는다는, 역시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이 미신 같은 이야기는 나를 매혹시킨다. -p.318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이언 매큐언 - <속죄> (0) | 2014.06.14 |
---|---|
[책] 한강 - <소년이 온다> (0) | 2014.05.29 |
[책] 허지웅 -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0) | 2014.03.25 |
[책] 바버라 에런 라이크 - <긍정의 배신> (0) | 2014.02.12 |
[책] 김동영 -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1) | 2013.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