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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5-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억울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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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업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134 - 135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할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p.207


#1. 한강 작가의 광주 이야기. 1980년 5월의 그 이야기. 심장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심장이 막혀서 숨이 안 쉬어지다가, 온 몸이 서늘해졌다가, 다시 눈물을 쏟는 것으로 끝난 책이었다. 책을 덮고 잠이 들었으나 자면서도 심장이 욱죄여왔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도 참 많이 아팠겠다. 그녀는 이제 괜찮아졌을까.

누군가는 죽었고,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옥같은 삶을 짊어지고 있다.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고 있는 끝 없는 부채감을, 사실은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들이 피로써 지켜낸 것들을 딛고, 내가, 우리가, 서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광주' 속에 살고 있다. 그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있는줄도 모른다. 내일은 내가, 내 가족이 피폭될 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국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p.17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2. 얼마전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거리 공연'이 있었다. 영상을 보다가 애국가를 부르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애국가를 부르다니. 愛國歌라니.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니. 의아했다. 나라를,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있다 그녀의 인터뷰를 봤다.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애국가를 불렀다고 했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도, 죽은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둘렀으며, 애국가를 불러주었다. 은숙이는 광주 시민을 처참하게 죽인 그들은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배를 침몰시키고, 바닷속에 가라앉는 아이들을 침묵시키고, 그 아이들의 가족들의 목소리에 침묵하고, 여전히 모든걸 감추려드는 그들을 나라라고 부를 수 없는것일까. 그러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나라가 아니라면,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p.213


#3. 내가, 우리가, 빚을 졌으나 잊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말 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빚을 진 댓가로, 그들을 이끌고 가야할 것이다.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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