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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저자
이언 매큐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3-09-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8년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음악상을 수상한 '어톤먼트'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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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과 서명한 진술서, 증언, 그리고 나이가 어려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법정 밖을 서성이며 느꼈던 두려움에 대한 기억은 브리오니가 앞으로 살아갈 세월 동안 그 여름날 밤과 새벽에 대한 기억의 단상들만큼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죄책감은 자신을 고문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냈고, 시간이 가면서 떠오르는 세밀한 기억의 구슬들을 하나하나 실에 꿰어 평생 동안 돌리면서 기도해야 할 묵주를 만들어 놓았다. p.248

#1. 영화 <어톤먼트>를 무척 좋아해서 몇번이나 봤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읽는게 약간은 망설여졌었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 소설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이 사건의 발단이 로비 터너를 사랑하는 어린 소녀의 질투로 인한 것으로 그려졌으나, 소설에서의 묘사는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질투가 뒤섞인, 인정 받고 싶은 사춘기 소녀의 자의식,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은 마음, 말을 내뱉으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스스로의 말 속에 말려들어가는 어린 마음과 생각들.

이 모든게 복잡하게 그려져 있으며,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부분은, 어린 소녀의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인다.


그녀가 "오늘은 전에 얘기했던 해부학 책을 보러 도서관에 갔어. 조용한 구석을 찾아서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어"라고 썼을 때, 그는 그녀 역시 매일밤 감옥의 얇은 담요 아래 누운 그의 마음을 빼앗는 바로 그 추억의 힘으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p.290


가장 관능적인 기억들 - 서재에서 함께했던 몇 분과 화이트홀 버스 정류장에서의 키스- 은 너무 자주 불러내어 이젠 그 색깔이 바래버렸다. (...) 이런 기억들이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지만, 기억에 지탱해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p.320


기다릴게. 돌아와. 그토록 소중했던 이 말도 지금은 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수학공식처럼 분명하고 감정이 배제된 일임이 분명했다. 기다림.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기다림이란 너무나 힘겨운 말이었다. 그는 그 단어가 군용 외투처럼 무겁게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지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해변가의 모든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쩌란 말인가? 그녀의 목소리가 '기다릴게. 돌아와' 라고 말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려 애써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p.368


#2. 영화 속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이 좋아, 아마 이 영화를 여러번 봤을 것이다. 기다릴게. 돌아와-

우정이 사랑이 되는 그 찰나의 순간.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고 긴 사랑. 추억의 힘으로 지탱해야 하는 사랑. 그러나 모진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너무 자주 불러내어야 하는 기억들. 그래서 바래져가는 추억의 색깔. 그 애틋함. 

추억의 힘이 아니라면 증오의 힘으로라도 버티고 살아내어 퇴각하고, 또 퇴각했던 로비 터너.


#3. 전쟁의 처참함과, 죽음과 상처에 대한 놀랍도록 세밀한 이언 매큐언의 서술. 죽음을 앞둔 프랑스 소년 군인과 그를 돌보던 브리오니의 대화 장면. 영화에선 짧고 무덤덤하게 들어가 있어 약간의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던 그 장면을 책으로 읽으니 마음이 저렸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p.521


#4. 브리오니는 결국 간호사가 되고, 전쟁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돌보면서 통렬하게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인 존재라는 것.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는 존재.'


어린시절 그녀의 실수로 한 순간에 파괴되었던 사람, 관계, 가족, 사랑 이런것들 역시, 쉽게 회복될 수는 없겠지.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니 소설가는 속죄를 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그녀의 표현대로, 속죄가 아닌 망각과 절망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낸 그 해피 엔딩이 사실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반전을 이미 다 알고 읽어야 하는 이 책은,

결말을 미리 알고 읽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지는게 아니라 더 처연하고 슬퍼진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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