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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자

저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8-2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베른하르트의 독일어로 쓰인 최고로 아름답고, 정밀하고, 기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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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의 책을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통해 먼저 접했는데,

그러고 나서 <몰락하는 자>를 읽으니 그 순서로 읽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평생을 함께한 친구 파울의 광기와 자살, 그를 방치한 스스로에 대한 변명 혹은 미안함에 대한 스스로의 끊임없는 독백과 같은 책이었는데, <몰락하는 자>의 자살한 베르트하이머에 대한 화자의 감정에서 실제 베른하르트의 모습을 엿봤다.


"난 면목도 없이 베르트하이머를 저버렸어, 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궁지에 몰려있을 때 등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난 친구의 죽음에 얼마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 했으며, 그 친구한테 어차피 도움이 안됐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였어도 그를 살리지 못했을 거라고, 그때는 이미 자살하기 일보 직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베른하르트가 화자 "나"에게만 투영되는 것은 아니다. 베른하르트는 굴드에게도, 몰락하는 자였던 베르트하이머에게도 투영된다. 모국어에 무감각한 자들과 생각하지도 않고 말하는 자들에 대한 혐오, 무의미한 것들을 겪어내야 하는 것들이 굴드의 입을 통해 말해진다. 예술의 극한에서 감탄하고, 질투하고, 또 절망하고, 좌절하고. 누군가는 피아노와 한 몸이 되려하고, 누군가는 피아노를 쳐다보는 것마저 괴로워진다.

그 극한의 예술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베른하르트가 선택한 건 글렌 굴드였고,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는데. 따라서 소설의 굴드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의 실제 연주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피아노와 한 몸이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한평생 바흐와 스타인웨이 사이에 낀 채로 마모될까봐 두려워서 있는 힘을 다해 그런 끔찍한 사태를 면해보려고 애쓰고 있어, 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스타인웨이가 돼서 글렌 굴드란 인간이 필요없어진다면 정말 이상적일텐데, 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스타인웨이가 되어 자기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든 피아노 연주자는 아무도 없어, 하고 글렌은 말했다. 



"절망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유일뮤이한 존재로 여기고 또 그래야만 하는데 베르트하이머는 그럴 줄 몰랐던 거야, 난 생각했다. 사람은 그 누가 됐든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난 끊임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이렇게 말하는 화자 역시도 평생 결국 글렌 굴드의 그늘 아래에 있었다. 그 역시 피아노를 그만두고 퇴화되기 시작했으며 굴드에 대한 책을 평생 쓰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예술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과연 '궁극의 예술'이란 존재하는걸까. 각자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예술이 '이상'에 가려져 소멸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옳고 그름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두번째 읽은 책이었지만 베른하르트의 날 서있는 독설과 서늘한 문장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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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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