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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9.04 [책] 지승호, 김규항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2. 2010.08.06 Rock Festival.(2) 2

가장왼쪽에서가장아래쪽까지B급좌파김규항이말하는이시대의진보와영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정치비평에세이
지은이 김규항 (알마,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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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 영성은 교회와 어떤 매개 없이도 가능한 개인적 결단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김규항 : 물론이죠. 교회뿐 아니라 종교와도 필연적인 관련은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개념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적이라는 것과 종교는 다른 것입니다. 영성은 분명히 종교적인 태도죠. 그러나 실재하는 종교는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아요.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죠. 무신론자를 자처하지만 종교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요. 참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물질주의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도 많습니다. 옛사람들을 보면 종교 체제에 속하지 않고도 종교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우리 세대의 할머니 정도 되는 분들을 보면 대단히 종교적이잖아요. 나무고 바위고 세상 만물에 생명이나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건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한테 잘못하면 결국 벌 받는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자기 내면과 사회와 우주 만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나'라는 존재는 그런 구조 속에서 보면 '먼지처럼 보잘것없다'는 겸손, 이런 것들이 종교적인 태도입니다. 한국 사회를 보면 기독교인이 많아질수록 종교적인 사람은 줄고 있어요. 많은 수의 한국 교회가 섬기는 신은 하느님이 아니라 돈이니까. 아니라고들 하겠지만, '예수 믿으면 가난해진다'고 전도해봐요. 교회의 9할은 바로 문 닫죠.














인터뷰의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쓴 <예수전>을 읽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말을 해 줄것 같아서.
'종교적'인 것들이 좋아, 그래서 '종교'를 갖기 시작했는데 막상 '종교'는 그다지 '종교적'이 아님을 알았을 때의 그 배신감. 내가 어린시절 봤던 '종교'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어느 하나의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이 인터뷰를 읽고 떠올랐던 박완서님의 산문집 <호미>의 일부분.

유교적인 집안이라고 기도를 안 하는 건 아니다.
6.25때 북으로 끌려간 오빠의 생사를 모를 때 엄마는 새벽이고, 밤이고, 끼니때고 아무 데나 대고 빌고 또 빌었다.
부뚜막에 오빠의 밥그릇에다 밥을 담아놓고도 빌었고,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도 빌었고, 하늘 보고 북두칠성한테도 빌었다. 
까치가 짖으면 고마워서 까치한테도 두 손을 모았고, 까마귀가 짖으면 까마귀한테 삿대질을 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분이 이성을 잃으니 미친 사람 같아서 집안 식구를 불안하게 했다. 전쟁이 끝나고 엄마의 모든 정성은 무위로 돌아갔다. 엄마는 그 후 절에 다니시면서 마음을 달래시다가, 말년에는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셨다. 기도는 사람의 정신을 돌게 하는게 아니라 바로잡아주는 것이고, 바로잡는 다는 건 중심을 잡아주는 일이 아닐까. 종교의 다름은 그 중심에 누구를 세우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데 큰 기도는 잘 안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다고, 잗다란 기도는 잔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잗다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 밖에. 기도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기도한다.

p.170-171 박완서 <호미 中- '그는 누구인가'에서>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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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김규항씨가 펜타포트를 다녀와서 쓰신 글이다.
얼마전 지승호씨가 김규항씨를 인터뷰했던 책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고 나서 이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서 또 이분이 '락페스티벌'에 대해 쓰신 글을 보니 새로워서 퍼왔다.
분명 나와 같은 무대를 보았는데, 이분은 이분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김규항'의 언어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을 풀어내셨다.
좀 어려운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Rock Mania라니. 그렇게 어려운 아저씨 아닐 수도 있겠다.






일요일, 두 아이(열일곱살 딸과 열네살 아들)와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갔다. 에고래핑, 킹스턴루디스카, 김창완밴드, 디르앙그레이, 뜨거운 감자, 그리고 그날의 헤드라이너 이언 브라운(스톤 로지스의 보컬이던).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돌아왔지만 아이들은 록페스티벌의 하루를 재미있어했다. “여행 일정과 겹치지만 않았다면 지산(지산 록페스티벌)도 가면 좋겠는데” 아쉬워도 하면서. 둘은 천천히 록음악에 빠져들고 있고 나는 그게 참 기쁘다. 10대 시절에 록음악에 빠져드는 일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제때 하면 좋은 일’ 가운데 하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열다섯 즈음 록음악에 빠져들었다. 그 전율의 순간, 그리고 이후 진행 과정에서 피어오른 에너지와 감성의 결들이 내 삶에 남긴 흔적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안도하곤 한다.
딸은 꽤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 음악을 들어 버릇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문혜원이 부른 ‘아이러브락앤롤’을 흥얼거리기에 조앤 젯의 원곡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것을 함께 비교해서 듣게 했더니 너무나 재미있어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지금도 주로 여성 싱어송라이터, 혹은 보컬이 여성인 록밴드를 좋아한다. 아들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남학생답게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져 놓고 동무들과(어지간한 아이들은 다 학원에 가버리고 없으니 자연스레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집 아이들과) 노느라 음악 따위엔 도무지 관심이 없었는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어제 전기기타를 품고 앉아 ‘스모크 온 더 워터’의 리프를 연습하는 그에게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와 깁슨 레스폴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나는 내가 양육을 맡은 두 아이가 록음악에 빠져들고 또 나름의 음악적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10대의 끓는 피와 ‘10대를 위한 인류의 문화유산’인 록음악이 조우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국의 10대들은 사정이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록음악이 그들의 끓는 피에 도달하기 전에 그들에게 음악적 취향의 씨앗이 생겨나기 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쳐 ‘공장 생산’된 기획사 음악들이 그들의 귀를 마비시켜버린다. 아무리 자유시장의 기치가 신처럼 존중되는 신자유주의 시절이라지만, ‘시험 기술을 익히는 짓’을 공부라 강요받으며 종일 따개비처럼 책상에 붙어사는 그들의 우울한 삶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잔혹한 일이다. 10대들을 위한 음악적 스크린쿼터라도 마련하자고 나설 법한 진보적인 미디어들도 한류니 뭐니 하며 한 동아리로 돌아가니 설상가상이랄까.

펜타포트에서 만난 후배가 자꾸만 두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는다. 왜 그러냐고 하니 “까맣게 그을린 게 너무 신기”하단다. 여름철에 아이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는 것 또한 수천년을 이어온 생태계의 한 풍경인데 이젠 그것도 신기한 일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하긴 한국의 10대들이 여름이고 겨울이고 얼굴 그을릴 겨를이 어디 있으며, 행여 잠시라도 그을릴라치면 ‘외모는 경쟁력’이라 생각하는 엄마들이 재빨리 자외선 차단제로 태양과 아이 사이를 가로막아 버리지 않을까. 변해가는 생태 풍경에 분노하는 우리가 왜 이 또렷한 생태 풍경엔 분노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강이나 산만 생태가 아니라 록음악의 열정에 솟구쳐 오르는 10대들의 몸뚱이도, 여름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의 천진스러운 얼굴도 생태의 한 풍경이라는 걸 이미 잊어버린 걸까.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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