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나, 책이나 한번에 많은걸 듣고 읽을 수가 없는 탓에, 지난 한 주간 세 번이나 공연을 다녀온 나로서는 그의 신보를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미 머릿속이 다른 음악들로 가득 차 있어서.
주말 저녁, 차분히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난 진심으로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물고 그의 음악을 끝까지 들었다.
아. 이 앨범은 진정 명반이 아닌가. 이런 완성도 높은 음반이라니. 이 사람 공연을 갔었어야 했구나. 다른걸 나중에 가더라도, 이걸 갔었어야 했던거구나. 중요한걸 놓쳐버린 마음에 그리고 한동안은 그의 공연을 진짜 볼 수가 없다는 허전함에 밤새도록 그의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지난 2008년, 뜻밖에 그가 정규 새 앨범이 아닌 Remake 앨범을 내었을 때, '정말 의외네' 하고 쉽게 듣기 시작했는데, 그가 하는 'remake'라는 것은 내가 아는 그 숱한 리메이크 앨범들과 개념이 다르다는걸 깨달았었다.
모든 음을 해체시켰다가 조규찬의 방식으로 다시 조합해서 쌓았던- 이 리메이크 앨범을 만드는데도 참 어려웠겠구나. 싶었더랬다.
이 9집을 들으며 내가 느낀건, 참 완성도 있게 '잘 쌓았다'는 것이었다.
좋은 노래들은 참 많지만, 이런 꽉 채워진 완성도와 잘 쌓았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역시. 20년이나 음악을 해왔고, 지난 앨범들을 통해 해왔던 '음악적 실험'들은, 지금의 이런 결과물을 내어놓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와, 악기들의 구성과 사운드가 이번 앨범에서 함께 한 여러 게스트들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 쌓아있었다. 그 모든게 다 '조규찬'이라는 뮤지션의 색을 띄고.
문득, 지난 뷰민라에서 그의 무대가 생각난다.
잘 웃지도 않고, 말수도 적었지만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눈물이 흐를만큼,
그의 목소리엔 특별함이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의 노래들의 코러스에서 그가 그래왔듯. 그는 노래 속에서 그의 존재감과,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그 어떤 기계적인 테크닉을 이용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그의 가.창.력.으로. 그 자리에 있던 듯 했는데 어느 새 없다 싶으면, 슬며시 노래 뒤에 있거나, 선율의 위에 얹어있거나, 다른 이의 목소리 뒤쪽에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렷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그 어떤 다른 음악적인 얘기를 빼놓고라도, 그는 최고의 보컬리스트다.
어둡고 우울한 색깔들에 조금은 거리감 있었던 그의 음악들이었는데 이번 앨범은 조금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
결코 음악 자체가 '쉬운 음악'은 아니지만 심각한 얼굴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진짜 고급스러운 팝 발라드로, 모던 락으로 한 트랙, 한 트랙. 장르를 불문하고,
그 사람의 놓쳐서는 안되는, 놓치고 싶지 않은 음악들에 나는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들려줄 음악은 더욱 더 기대된다.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그때까지 이 명반을 열심히 들어야겠다.
언제였더라. 더 이상은 Compact Disc의 형태로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던게.
나에게는 그 말이 꽤 많이. 충격적이었다.
음반이라는건.
CD의 디자인, 부클릿의 내용과 그림과 형태, 자켓의 재질과 모양.
이 모든것이 그 뮤지션의 '음악' 속에 포함되는 개념이고.
그 모든게 합쳐져서 그 음악인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기때문에
여전히 나는 CD를 모으고,
새 CD를 열어 볼 때의 짜릿함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이승환이라는 뮤지션은
그 종합복합적인 예술에 신경을 많-이 쓰는 뮤지션이라.
그의 음반을 받아 들었을 때 그의 음악만큼이나. 그의 앨범을 뜯는 즐거움이 더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다행스럽게도. 열번째 앨범을 고스란히 음반의 형태로 내 주었다.
최근 들었던 국내 앨범중에 이만큼 사운드가 좋은 앨범이 있었던가.
사실, 이렇게 불황인적도 없는 우리나라 가요계에.
이만큼의 물량을 투자하여 앨범을 낼 수 있는 가수가 몇이나 될까.
CD를 팔아서 낼 수 있는 수익도 한계가 있을텐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음악에. 온 힘을 다해 투자하고 쏟아부어준다.
그리고 이런 앨범은 구입해주는게 인지상정 ㅋ
나 역시 지난 날 그의 감성가득한 발라드 넘버들을 좋아했었고. 사랑했었고.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에 빠져있을 때, 이별했을 때.
그의 목소리와 노래에 함께 공감하고, 때론 눈물 지었다.
누가 그랬던가.
대중은 익숙한 것에 관대하다고.
대중이 그에게 원하는 것과,
그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음악 사이에는 조금의 괴리감이 분명 존재 하는 듯 하다.
나 역시 그에게 편안하고 따듯한 발라드 넘버를, 앨범을 접하기 전에,
분명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시인한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변화하고 있고.
그 안에 하고픈 음악들을 대중이 듣고싶은 것과 적절히 섞어내어.
멋진 작품을 내어놓았다.
그 역시 그러한 고민은 끊임없이 있지 않았을까.
대중이 원하는 것과 그가 하고픈 것.
그 두개의 개념이 대립되어 충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수렴하여 그 두개의 개념이 수렴되는 딱. 그 지점에 위치한 음악을 내어 놓았다 싶은 그런 느낌.
그 엄청나다는 엔지니어, Humberto Gatica부터 시작해서
황성제, 조규찬, 유희열, 하림, 정지찬, 윤도현, 요한(피아), 신현권 같은 연륜있는 국내 뮤지션을포함하여,
권순관, 임헌일과 같은 후배 뮤지션들까지.
그의 음악과 함께 한 사람들을 보면,
그의 유연성에 한번 더 놀라게 되고.
완벽을 추구하고, 앨범 하나를 절대 쉽게 내지 않는 그이지만.
외롭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
20년 전에도,
난 그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했는데.
우리 시대의 음악인이.
정체되어있지 않고 앞으로 더더더-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변화하는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