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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저자
정이현 지음
출판사
창비 | 2013-07-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96년 5월의 어느 날 봉인되고 멈춰버린 쓰라린 성장의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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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정이현 소설을 읽게된다.

내가 여고, 여대를 나왔고, 그녀와 동시대를 살았고, 그녀가 그려내는 사람들이 아마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그렇게 멀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쓴 몇권의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작품들이 대단히 밀도 있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그녀만의 특유한 문장과 느낌을 분명히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책 속의 문장들 역시도, 그녀가 그려내는 여자들과 어딘가 분명 닮아있다.


안녕, 내 모든것. 

이 책이 처음 기획 될 무렵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내 모든 것' 이라는 노래를 모티브로 

그녀가 소설을 쓰고 있단 얘기를 얼풋 들었는데, 그 땐 그저 제목 정도만 따 왔겠거니 했다.

읽고보니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도 등장하고,

90년대에 나와 함께 10대를 보냈던 아이들의 이야기다.


전작들에 비해서더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

특히 이 전에 나왔던 '사랑의 기초'에 비하면 훨씬 좋았다.


가족의 부재, 어리고, 어리석었던, 사랑을 하던, 꿈을 꾸던, 그랬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 


나의 10대.

삶이 그렇게 죽음과 닿아있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을까. 

백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지만,

그때의 서태지와 아이들에 빠져들었던 내 모습과, 

그 때의 그 해맑디 맑은 태지가 계속 그리워서 심장이 몽글 몽글.

과거에서부터 쭉 이어져 온, 어떤 것들.

손 내밀면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들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그런 책.




창밖은 여전히 신비로운 어둠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차차 묽어지다 곧 희붐하게 밝아올 것이다. 날이 밝고 나면 그때 우리는 우리가 살았던 내일에 대해, 다시 도달하지 못할 어제에 대해 조금쯤 더 알게 될까.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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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돌아가야 할 곳에 돌아가기 위해, 되찾아야 할 것을 찾아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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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함께 시작하는 삶.

죽으면서 동시에 시작되는. 새로운 이야기.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가 떠오르는 이야기.

특별한 음악을 통해 -어두운 방에 불이 켜지듯- 어떤 기억이 반짝 켜지는,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그런 경험.

음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하루키다운 이야기.



오래전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라는 산문집에서 


"만일 내가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다고 해도, 역시 지금처럼 똑같은 인생을 더듬어가면서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 자신이 되는 것 말고는 또 다른 길이란 없다."


라고 하루키가 말했을때, 어찌보면 참 허무한 그 글이 이상하게 좋았다.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도, 이건 '나' 자신이니까. 내가 어떤 길을 걸었어도 난 여기로 왔었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그냥 좀 위로가 되니까.


다자키 쓰쿠루가 핀란드까지 날아가서 구로에게 들었던 이야기.


"우리는 제각기 있는 힘을 다해 각자 인생을 살아왔어. 그리고 긴 안목으로 보면, 그때 혹시 잘못 판단하고 다른 행동을 선택했다 해도, 어느 정도 오차야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지금과 같은 자리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 느낌이 들어."


이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구나, 하루키는 또 그때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다자키 쓰쿠루는 어땠을까. 이 이야기를 듣고. 

분명 내가 첨 이 글을 읽었을때와 같은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과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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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 세계

저자
김소연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2-11-1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시옷의 낱말들!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시옷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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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일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느끼는 당신과 당신이 느끼는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당신 앞에 있는 나는 과연 나인가. 당신은 당신으로 내 앞에 있는가. 당신이 느끼는 당신과 내게 보여주는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어디까지가 거짓말인가.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못났든,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들려주는 말들을 사랑한다. 그게 거짓투성이여도 상관없다.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당신을, 나는 당신이라 부르려 한다. 당신이 들려주는 말들을 당신의 진심이라고 여기려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내가 함께 믿고싶기 때문이다. 당신의 실체와 당신의 이상형 사이에서, 당신의 이상형에 당신이 기꺼이 기울 때를,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내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안 보여주고 싶어하는 당신의 실체는 어찌될 건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여 당신의 내부 어디에선가 불쌍히 쪼그려 흐느끼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당신의 실체와 나는 당신이라는 중개인 없이 꿈속에서 만난다. 꿈속에서 만나 서로 싸우고 악담하다 화해하고 함께 흐느껴 운다. 실은, 또 다른 내가 당신의 실체와 함께 내 꿈속에서 살고 있다. 더 리얼하게, 더 치명적이게, 어쩌면 더 굳건하게. 

p.165














이 책은 참 좋았다.

시인이 쓰는 에세이란 이런거구나, 싶었다. 그 동안 읽어온 어떤 에세이와도 달랐다.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를때에도 고심하고, 또 고심한 것이 느껴지지만

그게 집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녀의 글들에 인용되어진 수 많은 시들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게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다.


마치 퀼트 이불처럼. 

한 땀 한 땀 조심스럽게 바느질을 하며 다른 시 속의 문장들과 작가 자신의 문장들을 연결하듯.

아름답게 형형 색색 그녀의 글들과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그녀의 글들을 하나 하나 천천히 읽다가,

시기 적절한 때에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숭배하라 당신의 거짓말을> 속의 한 구절을 적어놓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그가 보여주고 싶은 그의 모습을 믿어줄 뿐이었다.


다만 우리의 어떤,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하나의 시절이 지나가고 있음을 

조금은 서럽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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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희대의 이야기꾼 천명관의 두 번째 장편소설!희대의 이야기꾼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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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식구들은 모두 즐거웠다. 나 또한 미연이 맞춰준 이태리제 양복을 입고 가족에게 둘러싸여 쑥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났더라면 한 편의 훈훈한 가족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 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p.45 






천명관의 소설이 늘 영화같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눈 앞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천명관의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 그의 소설이 나에게만 그런 느낌을 주었던건 아니었겠지.


경험상 영화와 소설, 두가지를 모두 즐기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둘 중 어느 한쪽에는 꼭 실망을 하게 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고령화 가족>은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령화 가족을 다시 펼쳐들었다가 이 문장의 아이러니에 웃음이 났다.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훈훈한 가족 영화가 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책이 덮이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 많은 시행착오와,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을 되풀이 하는 우리의 인생처럼.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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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김중혁 - <요요>

Book- 2013. 1. 23. 23:06


요요(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2012)

저자
김중혁 지음
출판사
문학의숲 | 2012-10-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김중혁의 "요요". 독특한 발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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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재는 장수영이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쌓여 있는 말이 많아서 그걸 꺼내 놓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못 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하지 못한 말이 더 쌓이고 말았다. 높이 쌓아 올린 책 더미에서 밑바닥과 가운데 책을 꺼내기 힘들듯 오래전 얘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 얘기들을 꺼내려면 한 줄로 쌓인 모든 얘기를 허물거나 위에 쌓인 이야기를 전부 걷어 내야 한다.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남아있을까. 그 이야기들을 꺼낼 만한 시간이 다시 올까.


멀리 있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할말은 쌓여있지만 아무말도 시작할 수 없는 그런 먹먹함은

높이 쌓아 올린 책 더미에서 책을 빼내면서, 쌓여있는 책들이 우르르 무너질까 두려운, 그런 마음 같은 거였구나.

-그 이야기들을 꺼낼 만한 시간이 다시 올까.

어제 이 소설을 다시 읽는데, 괜시리 이 문장에 마음이 애달프다.


김중혁 작가님의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엿볼 수 있던, 소설 <요요>



네가 만들어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고 있는 중인 걸까.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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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마음의숲 | 2012-07-1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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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땐, 유머가 너무너무 부족한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하루키 에세이를 읽고 난 뒤에 바로 이어 읽어서 그랬던건지, 엄청 지루한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같은 느낌.

다 못 읽게 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부분부분 와닿는 이야기도 많았고, 유익하기도 했고, 이 책이 좋아지게 된 어떤 순간도 있었다. "잊혀지지 않는 여름들이 있다" 로 시작되는, <여름의 첫 번째 숨결>.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아이폰에서 거짓말처럼 흘러나온 <기쿠지로의 여름> OST 음악을 들으며, 잊혀지지 않는 어떤 오래전 여름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에 말이다. 

기억에 남는 몇가지 글들을 기록해 둔다. 김연수 작가님이 다음번 에세이는 좀 재밌게 써주길 바라면서.



1. <눈, 해산물, 운하, 맥주, 친구>


행사를 끝마치고 나올 때부터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근처 맥줏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다음과 같다. 눈, 해산물, 운하, 맥주, 친구. 이 중에서 두개만 동그라미를 칠 수 있어도 대단한 행운인데(몇 년 전 홋카이도 오타루에 갔을 때, 나는 다섯 개에다 모두 동그라미를 칠 수 있었다) 그날은 4개까지 가능했다. p. 70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난 또 홋카이도 사진을 열어봤다. 언제나, 어느곳이나 여행은 늘 좋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꿈꿔오는 여행지가 있을것이다. 나에겐 그 중 한곳이 홋카이도 였고. 그냥 이 문장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그 겨울 그곳에서 맥주를 마셨던건 나에게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2. <어쨌든 우주도 나를 돕겠지>


"사람은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삶을 통제 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대로 산다고 본다. 우리가 자꾸만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 그 떄문이다. 회사원은 사장을 원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결혼을 원한다. 정말 멋진 사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람,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자기계발서에 써 놓은 것처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원하지 않고 20대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럼에도 20대가 끝날 무렵에 우리 대부분은 알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지질하며, 자주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모든게 다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결과를 얻는 것일까? 그러니 20대 후반이 되면 우리는 모두 샐리처럼 울 수밖에 없다. 그건 아마도 20대란 씨 뿌리는 시기이지 거두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청춘이라는 단어에 '봄'의 뜻이 들어가는건 그 때문이겠지. 20대에 우리가 원할 수 있는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뿐이니까." -p.202-203



20대의 나에겐 정말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를 위해 움직일거라는 코엘료의 연금술사속의 그 문장이 기도문 같았던 날들도 있었지. 하지만 이젠 "세상은 딱히 너를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나나의 문장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느쪽이든 상관은 없다. 다만,내가 예측한 대로, 계획세웠던 대로 흘러가지 않아 고통스러웠고 후회가 많았던 내 20대가 이 글들을 읽으면서 아주 조금쯤은, 위로 받을 수 있었다.


3. <갑의 계획, 을의 인생>


계획할 때의 우리는 '갑'의 입장이다. 스킨스쿠버도 배우고, 이탈리아 에도 가고...... 못 하겠다는 말은 게으름뱅이들의 사전에나 존재한다는 듯이 의욕에 차서 계획을 작성한다. 우리 인생에도 무자비한 사주가 있다면, 그건 계획을 세울때의 '나', 즉 '갑의 나'다. 그러나막상 실천할 때가 되면, 우리는 '을'의 처지가 되어 갖은 푸념을 다 늘어놓는다. 왜 그 일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수천 가지도 더 댈 수 있다." p.206-207


2013년이 되고, 부쩍 계획을 많이 세웠다. 한동안 계획을 세우는게 무서웠던 지난 몇년간, 나는 정말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한 두가지 계획만 세워두고, 그것에만 집중하며 지내왔었다. 그런 나에게 김연수씨가 이 책에서 "GTD" 즉, "Get Things Done"이라는 시간관리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단, 끝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단번에 끝낼 수 없다면 일을 잘게 쪼개서라도 시작한 일은 끝낸다. 어쨌든 시작한 일을 2013년의 하루하루에 나누어 담아 끝내보려고 한다.  


4.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


우주라는 공간은 나무의 나이테와 비슷하게 생겼다. 우주의 제일 가장자리에는 우주가 만들어지던 순간의 광경이 담겨 있을 것이다. 안 쪽으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모두 보게 되리라. 그 어디쯤에는 은색 표지의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는 이 삶에서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영원히 이 우주 안에서 나와 함께 있으니 이젠 외롭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소년의 모습도 담겨 있을 것이다. p.212


소설가가 상대성 이론을 읽으면 이런 글이 나오는구나, 싶었던 글.

따듯하고, 조금은 로맨틱하기까지 했다. 


5. <대화 없이도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공연장 역시 내게는 혼자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다. 도서관과 달리 공연장에는 혼자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대개 존경하거나 사랑하거나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 간다. 그렇지만 종이 울리고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의 관객들은 모두 혼자가 된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연을 볼 수 없다는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만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축복에 가깝다. 존경하건, 사랑하거나 친밀한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로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없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이나 공연장을 나와서도 우리가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다." p.234


내가 간절히 꿈꾸는 삶이기도 하다.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혼자인 사람들을 불쌍하거나, 안타깝게 바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이 문장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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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까치 | 2002-02-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댄스 댄스 댄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등을 발표하면서 우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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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속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

챈들러 씨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견을 좀 늘어 놓자면, '안녕'을 말한 직후의 죽음은 실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우리가 정말 잠시 죽는 것은 자신이 '안녕'을 말했다는 사실을 몸 한가운데에서 직면했을 때다. 이별을 말했다는 사실의 무게를 자기 자신의 일로서 실감했을 때. 그러나 대개의 경우,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주위를 한 바퀴 돌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 왔지만, 능숙하게 '안녕'이라고 말했던 예는 거의 기억에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좀더 제대로 안녕을 말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설령 후회했다고 해도, 그래서 삶의 방식이 바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책임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이라는 것은 아마 뭔가가 있어 갑자기 죽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여러 가지 것들이 쌓여 가면서 죽어가는 것일 것이다.  


p.154-155 <안녕을 말하는 것은>中


무라카미 라디오의 제일 마지막 편에 나오는 이야기.

인생의 수 많은 '안녕'들이 쌓이면서, 우린 서서히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이겠지.

어떠한 '안녕'을 겪고, 통과하면서. 


그 '죽음 같은' 안녕들의 의미를 이제는 너무 잘 아는 나이가 되어버려서. 

이 얘기가 오래오래 맘에 남는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덕분에 최근 나온 무라카미 라디오2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도 같이 읽고 싶어짐.

언제나 그렇듯 음악에 대한 무한한 그의 애정을 담은 문장들과,

맛있는 음식에 대한 그의 예찬론,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과 엉뚱한 그의 일상이 유쾌했던 책. :)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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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2-08-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가는 것!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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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오렌지 빛 하늘이 잠기는 동시에 반대편에서 역청 빛 물결이 밀려드는 어스름의 풍경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까닭은 그게 종말의 풍경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날마다 하나의 낮이 종말을 고한다. 밤은 그 뒤에도 살아 남은 사람들의 공간이다.
p.237




김연수 그대로의 섬세함은 여전하지만 이전의 글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작품을 통해 만난다는건 참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받아뒀던 e-book을, 터키에선 읽지 못하고, 

(이걸 다운 받기 위해 터키에서 그 고생을 해놓고!ㅋ) 

어느 날, 퇴근 후 문득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흔한 소재지만 절대 흔하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 낸 김연수.

문장 하나하나를 다시 곱씹고 싶어지는 날이 올 것 같아서, 

시간이 흐른 뒤, 분명 다시 읽고 싶어질 날이 올 것 같아서-

종이책으로 다시 주문.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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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저자
빌 브라이슨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08-04-30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나를 부르는 숲,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 빌 브라이슨의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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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너무 뻔한 말 같지만 지난 반세기동안 지어진 건물들을 보면

사람을 위해 지은 건축물은 거의 전무하다.

그동안 건물은 자동차나 상점, 건설회사를 위해 지어졌다.

그리고 도시를 사람이 사는 곳으로, 기능과 이동을 위한 곳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남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려하지 않는

돈과 야망으로 가득찬 소수만을 위해 지어졌다.

왜 음습한 터널이나 높은 육교를 통해야만 복잡한 거리를 다닐 수 있어야 하는가.

왜 사람보다 자동차를 우선 고려하는가.

인간은 돈이 많으면서도 왜 그리 바보인가.

이 모두는 우리 시대의 저주다.

우리는 돈은 너무 많고, 생각은 너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퐁피두 센터는 합성 수지로 만든 '부유하고 우매한 인간상의 상징이다.



덩치가 큰 체제는 늘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도무지 미적감각이라곤 없는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의미심장하고 냉철한 유머가 들어있는 여행기.

여느 여행기와는 사뭇 다른 그 느낌이 참 좋았던 책.

여행의 감성만을 내세우지 않아서 더 좋았다.


지난 해 여름, 홍수가 난 서울에서 출근을 하던 어느 아침.

질척대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 이 책의 이 문구가 떠올랐다.

그 날은 "돈과 야망으로 가득찬 소수를 위한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던 날이었다.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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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저자
실비 제르맹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6-04-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89년 분노의 나날들로 페미나상을 수상한 작가 실비 제르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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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어떤 눈물들은 아무리 해묵은 것이라 할지라도 끊이지 않고 뜨거운 느낌을 뿌리고, 살갗에 심장의 살갗에 다시금 진주처럼 맺히고 있으니 말이다.

왜냐하면 어떤 눈물들은 그것들을 흘린 두 눈이 감겨지고 꺼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흐르기를 그치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의 두 뺨에 흐르기를 그치지 않으니 말이다.


프라하 거리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의 그 크고 비물질적인 몸 속에서 나직하게 소리내며 흐르는 것은 비탄에 잠긴 사람들의 그 눈물인 것이다.

그 울고 다니는 여자는 두 가지 세계 사이에서,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현재의 세계와 과거의 세계, 살과 숨의 세계와 먼지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서 끝없이 다리를 쩔뚝거리고 있다. 그 여자는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 사이를 오간다. 사라진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의 것이 한데 섞인 눈물의 남모르는 밀사가 되어.



버려진 집 안에서 바람이 씽씽 불고 있었다. 그 바람에서는 말라버린 잉크와 오래된 종이, 그리고 피에 젖은 빵의 맛이 났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던, 그리하여 그것의 빛마저 짓밟아버렸던, 수천 수백만 개 별들이 풍기는 악취들, 혹은 진흙 속에 뒹구는 개털같이 구역질나는 영혼들의 악취일까?


그 까닭은 그 그 바깥공기 속에서 역사가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고통이 정말 얼마나 사람을 아프게 하는가를 알려면, 한 방울의 눈물이 엄청난 무게라는 것을 사람들이 잊지 않으려면, 그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고 또 그것을 말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편의 詩 와 같았던 책.

아름다우며 마음이 욱죄여 오는 문장들.

할 수만 있다면 이 한권의 책을 다 외우고픈 욕망이 들었던.


Posted by [TK]시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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