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4)

9
감독
실뱅 쇼메
출연
귀욤 고익스, 앤 르 니, 베르나데트 라퐁, 엘렌 뱅상, 루이스 레고
정보
드라마 | 프랑스 | 106 분 | 2014-07-24
다운로드

네 엄마는 여기 있어.

네 기억의 뿌연 물 속에.

기억은 물고기처럼 물 속 깊숙히 숨어 있단다.

이게 연못 수면이라고 치자.

캄캄하고 평평해서 아무 것도 안 사는 것 같지.

네가 낚시꾼이라면 기억들이 좋아할만한 미끼를 던져야지.

그러면 수면 밑에서 뭔가 움직이는게 보일 거야.

그럼 낚시줄을 던져서 짠!

저런걸 낚는거지.


추억을 낚아올릴 미끼로 뭐가 좋을까?

이거야.

추억은 음악을 좋아하거든.












무엇보다 음악이 좋았고, 색감이 좋았고.

피아노를, 우쿨렐레를, 가드닝을, 베이킹을, 여행을 꿈꾸게 하는 영화였기에, 그래서 좋았던 영화였지만.

깊숙한 기억을 건져내어 그것을 응시하고, 그래서 삶의 한 발을 앞으로 내딛고 나아가는 청년의 이야기-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리가 없었다.



오래 전 이은결의 마술을 보고 감동을 받아, 연례 행사처럼, 해마다 그의 연말 공연을 보러가던 때가 있었다. 

그의 마술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행복한 것들만 꺼내어 눈 앞에 펼쳐내어 보이는 신비함이 있었다. 그래서 난 그의 마술을 좋아했다. 어쩌면 그의 마술이 나에겐 프루스트 부인이 내어주는 차 한잔이 아니었나 싶다. 행복했던 기억을 낚아주는. 


쓰디 쓴 차 한잔을 마시고, 쓴 맛이 올라오면 달콤한 마들렌을 베어 물고.

쓰고 아픈 기억을, 한 입 베어 문 마들렌으로 덮으며 살아가는 게 인생일까.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여인의 향기  (0) 2014.09.08
<영화> Take this waltz (우리도 사랑일까)  (0) 2014.01.22
<영화> Woody Allen, a Documentary  (0) 2013.03.29
<영화> Searching for Sugar Man  (0) 2013.02.20
<영화> Midnight in Paris  (0) 2012.09.17
Posted by [TK]시월애
|

140812

Diary/2014 2014. 8. 12. 23:16

#1. 가만히 누워있는데 문득 아주 아주 오래 전 주리의 편지 속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나에겐 눈 앞에 닥친 일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이란걸 하고 있는지 없는지 의식 할 수 조차 없는 시간이 하루에 두 세시간쯤 필요해. 그런 시간이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논문 두 개를 챙겨왔고, 독일 출장 계획 짜느라 책도 두 권 빌려왔고, 북마크 해 놓은 블로그들도 봐야 하고, 사 놓은 신간들과 넘치는 SNS, 뉴스들.

읽고 싶다는 욕망과 읽기에서 해방되고 싶은 욕망.

두 개의 상반된 욕망 사이에서 사실은 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심신을 괴롭게 하고 있는 듯 하다.


퇴근 하자마자 이 시간까지 이것 저것 뒤적이다 지쳐 침대에 가만히 누워본다. 

그리고 주리의 편지 속 그 문장을 떠올린다.



#2. 아침 CNN 뉴스 속보로 받은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 소식에 아직도 마음이 아려온다.

어쩌면 오늘 이렇게 힘든건 아침부터 계속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랐던 이들은. 그를 통해 웃고, 울고, 생각하고, 위로받았다. 그런 그가 너무 외롭게 세상을 떠난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프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사는게 쓸쓸해졌다.





'Diary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1026  (0) 2014.10.26
140918  (0) 2014.09.19
140804  (0) 2014.08.04
140710  (0) 2014.07.10
me2day  (0) 2014.06.03
Posted by [TK]시월애
|



9월 15일에 발매될 네번째 정규 앨범의 싱글컷

아 정말 정말 좋다 :D



Posted by [TK]시월애
|

140804

Diary/2014 2014. 8. 4. 17:01

떠돌이 개, 지두가 우리집 주차장에서 생활한지도 이주가 넘어간다. 처음엔 걱정도 엄청 많이 하고, 밥 그릇을 누가 훔쳐가는 일도 있었지만, 지두도, 가지도, 나도, 이제 조금씩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해 적응 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비가 많이 내린 주말 내내, 오지 않는 지두가 좀 걱정됐는데 오늘 또 반갑게 인사한다.


트위터로 알게 된 캣맘분이 계신데, 그분이 돌보던 아깽이가 주말 사이에 죽었다. 참 단란하고 예쁜 숲 속 고양이 가족이었는데, (내가 알기론) 어미가 최근 새로 임신을 하고, 아직 너무 어린 새끼들을 떼어내버린 탓에 새끼가 다치고 외로워 했었다고. 아기 고양이를 구조하고, 병원에 데려갔으나 결국엔 하늘 나라로 갔다고 글이 올라왔다.


그 분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돌본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삶을 돌보는 건 책임감 만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을 돌보는건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 할 것 같다. 내 손으로 기르지 않았던 생물의 아픔을 나누고, 죽음을 기꺼이 지키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 줄 수 있다는건, 그만큼 넓은 사람이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죽음, 아픔, 슬픔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그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랑이라는 건. 


사실 여전히 지두와 정드는 것이 걱정이다. 어느 날 지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이고, 그래서 또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의 얄팍함에 대해 돌아본다. 오래전에 키웠던 산세베리아도 그랬지. 어느 순간 이 녀석이 죽으면 외로워지겠구나. 그래서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무언갈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로부터 지금의 나는, 얼만큼 더 넓어졌을까. 얼만큼 달라져있나. 



'Diary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918  (0) 2014.09.19
140812  (0) 2014.08.12
140710  (0) 2014.07.10
me2day  (0) 2014.06.03
140525  (0) 2014.05.25
Posted by [TK]시월애
|



그들에게 린디합을

저자
손보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8-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 거기에는 중력을 거스...
가격비교


고든 굴드는 죽기 몇 년 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거예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란다."

<과학자의 사랑>중 


'린디합'이 뭔지도 모르고 이 책 속에 수록된 단편 <과학자의 사랑>의 저 문장 때문에 읽게 된 책. 

지금의 나는 그 어떤 선택도 바꿀 수 없는데 - 참 clear한 문장이라고 생각됐다.



단편은 서로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데,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며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거나, 혹은 키워드가 겹치거나, 등장 인물이나 주제가 비슷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 구성이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그 얽힘이 조금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너무 성기게 얽힌건 아닌가, 촘촘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에서 이야기하는 '감정의 간격'을 손보미 작가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얽혀있는 이야기 사이의 '간격'이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책 중간 중간 장난 가득한 포인트를 숨겨놓고 있고,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나 <과학자의 사랑>에서 번역문체를 이용한 형식이 독특하고 재밌었는데, 다음 소설은 어떻게 쓸 것인지, 이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장편은 어떻게 쓸지 이런게 궁금해진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단편으로 꼽았지만, 난 제일 별로였던 <애드벌룬>

그래도 마지막 그와 그녀의 대화 장면이 좋았다.

"있잖아. 약속 하나만 해줄래?"

"뭔데?"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그러니까 다른 세상에서는 나만 사랑해줄래?"

그는 가슴이 무척 아팠지만 그녀를 더 꼭 끌어안은 후 대답했다.

"그래. 너만 사랑할게."





플러스.

<그들에게 린디합을>에 나오는 ILHC (International Lindy Hop Championship), invitational Jack and Jill 이런게 실제 존재하는 지는 나중에 알았다. 허구와 사실을 교묘하게 섞는데 능하신듯. 샤론 데이비스, 후안 비야파네도 실제 인물이라고 해서 영상을 봤는데 그들이 또  invitational Jack and Jill 무대에 섰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엥-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김연수 - <소설가의 일>  (0) 2015.01.03
同時代  (0) 2014.09.19
[책] 토마스 베른하르트 - <몰락하는 자>  (0) 2014.07.12
[책] 이언 매큐언 - <속죄>  (0) 2014.06.14
[책] 한강 - <소년이 온다>  (0) 2014.05.29
Posted by [TK]시월애
|



몰락하는 자

저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8-2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베른하르트의 독일어로 쓰인 최고로 아름답고, 정밀하고, 기술적이...
가격비교


베른하르트의 책을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통해 먼저 접했는데,

그러고 나서 <몰락하는 자>를 읽으니 그 순서로 읽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평생을 함께한 친구 파울의 광기와 자살, 그를 방치한 스스로에 대한 변명 혹은 미안함에 대한 스스로의 끊임없는 독백과 같은 책이었는데, <몰락하는 자>의 자살한 베르트하이머에 대한 화자의 감정에서 실제 베른하르트의 모습을 엿봤다.


"난 면목도 없이 베르트하이머를 저버렸어, 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궁지에 몰려있을 때 등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난 친구의 죽음에 얼마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 했으며, 그 친구한테 어차피 도움이 안됐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였어도 그를 살리지 못했을 거라고, 그때는 이미 자살하기 일보 직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베른하르트가 화자 "나"에게만 투영되는 것은 아니다. 베른하르트는 굴드에게도, 몰락하는 자였던 베르트하이머에게도 투영된다. 모국어에 무감각한 자들과 생각하지도 않고 말하는 자들에 대한 혐오, 무의미한 것들을 겪어내야 하는 것들이 굴드의 입을 통해 말해진다. 예술의 극한에서 감탄하고, 질투하고, 또 절망하고, 좌절하고. 누군가는 피아노와 한 몸이 되려하고, 누군가는 피아노를 쳐다보는 것마저 괴로워진다.

그 극한의 예술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베른하르트가 선택한 건 글렌 굴드였고,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는데. 따라서 소설의 굴드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의 실제 연주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피아노와 한 몸이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한평생 바흐와 스타인웨이 사이에 낀 채로 마모될까봐 두려워서 있는 힘을 다해 그런 끔찍한 사태를 면해보려고 애쓰고 있어, 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스타인웨이가 돼서 글렌 굴드란 인간이 필요없어진다면 정말 이상적일텐데, 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스타인웨이가 되어 자기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든 피아노 연주자는 아무도 없어, 하고 글렌은 말했다. 



"절망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유일뮤이한 존재로 여기고 또 그래야만 하는데 베르트하이머는 그럴 줄 몰랐던 거야, 난 생각했다. 사람은 그 누가 됐든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난 끊임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이렇게 말하는 화자 역시도 평생 결국 글렌 굴드의 그늘 아래에 있었다. 그 역시 피아노를 그만두고 퇴화되기 시작했으며 굴드에 대한 책을 평생 쓰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예술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과연 '궁극의 예술'이란 존재하는걸까. 각자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예술이 '이상'에 가려져 소멸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옳고 그름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두번째 읽은 책이었지만 베른하르트의 날 서있는 독설과 서늘한 문장들이 참 좋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同時代  (0) 2014.09.19
[책] 손보미 - <그들에게 린디합을>  (0) 2014.07.18
[책] 이언 매큐언 - <속죄>  (0) 2014.06.14
[책] 한강 - <소년이 온다>  (0) 2014.05.29
[책] 김연수 - <세계의 끝, 여자친구>  (0) 2014.04.27
Posted by [TK]시월애
|

140710

Diary/2014 2014. 7. 10. 15:22

#1. 그녀.

나는 차가운 사람이지만 마음에 독을 품고 살지는 않는다. 그 독이 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그녀의 심장 한 가운데에 품고 있는 독기가, 사실 나는 무섭다. 뭐든 120%로 극복하겠다는 자세로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무섭다던 휴일의 말처럼.

나에게 삶이 대개 '그럼에도 살아내는 것'에 가깝다면, 그녀에게 삶은 '그렇기 때문에 싸워 이겨내는 것'에 가까울까.


#2. 그.

그를 처음 만났을때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칭찬에 인색한 내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런 말을 건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자신의 삶, 일, 공부, 연구, 환경, 미래, 능력. 이런 것들에 대해 객관적 태도를 유지할 줄 알며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다. 똑똑함은 물론이거니와 현명했다. 그런 視野,가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 그녀.

그녀는 너무 착한 사람이라, 옆에 있는 나를 문득 문득 의기소침 하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나의 '선하지 못함'이, 그녀로 인하여 마치 그림자처럼 내 뒤에 드리워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물론 이건 나의 자격 지심이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착함이 때론 불편하다.  


#4. 그.

어떤 대화가 기억을 건드렸다. 그래서 그가 보고싶었다. "보고싶다"는 말은 욕망을 드러냄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고백이다. 그래서 나에게 '보고싶다'는 말이 그토록 어려웠음을 깨닫는다. 



'Diary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812  (0) 2014.08.12
140804  (0) 2014.08.04
me2day  (0) 2014.06.03
140525  (0) 2014.05.25
140520  (0) 2014.05.20
Posted by [TK]시월애
|



2009. 11.05.

재평의 fake fake traveler - bedroom live



Posted by [TK]시월애
|



속죄

저자
이언 매큐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3-09-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8년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음악상을 수상한 '어톤먼트' 원작...
가격비교


심문과 서명한 진술서, 증언, 그리고 나이가 어려 입장이 허용되지 않아 법정 밖을 서성이며 느꼈던 두려움에 대한 기억은 브리오니가 앞으로 살아갈 세월 동안 그 여름날 밤과 새벽에 대한 기억의 단상들만큼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죄책감은 자신을 고문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냈고, 시간이 가면서 떠오르는 세밀한 기억의 구슬들을 하나하나 실에 꿰어 평생 동안 돌리면서 기도해야 할 묵주를 만들어 놓았다. p.248

#1. 영화 <어톤먼트>를 무척 좋아해서 몇번이나 봤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읽는게 약간은 망설여졌었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 소설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이 사건의 발단이 로비 터너를 사랑하는 어린 소녀의 질투로 인한 것으로 그려졌으나, 소설에서의 묘사는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질투가 뒤섞인, 인정 받고 싶은 사춘기 소녀의 자의식,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은 마음, 말을 내뱉으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스스로의 말 속에 말려들어가는 어린 마음과 생각들.

이 모든게 복잡하게 그려져 있으며,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부분은, 어린 소녀의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인다.


그녀가 "오늘은 전에 얘기했던 해부학 책을 보러 도서관에 갔어. 조용한 구석을 찾아서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어"라고 썼을 때, 그는 그녀 역시 매일밤 감옥의 얇은 담요 아래 누운 그의 마음을 빼앗는 바로 그 추억의 힘으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p.290


가장 관능적인 기억들 - 서재에서 함께했던 몇 분과 화이트홀 버스 정류장에서의 키스- 은 너무 자주 불러내어 이젠 그 색깔이 바래버렸다. (...) 이런 기억들이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지만, 기억에 지탱해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p.320


기다릴게. 돌아와. 그토록 소중했던 이 말도 지금은 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수학공식처럼 분명하고 감정이 배제된 일임이 분명했다. 기다림.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기다림이란 너무나 힘겨운 말이었다. 그는 그 단어가 군용 외투처럼 무겁게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지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해변가의 모든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쩌란 말인가? 그녀의 목소리가 '기다릴게. 돌아와' 라고 말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려 애써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p.368


#2. 영화 속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이 좋아, 아마 이 영화를 여러번 봤을 것이다. 기다릴게. 돌아와-

우정이 사랑이 되는 그 찰나의 순간.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고 긴 사랑. 추억의 힘으로 지탱해야 하는 사랑. 그러나 모진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너무 자주 불러내어야 하는 기억들. 그래서 바래져가는 추억의 색깔. 그 애틋함. 

추억의 힘이 아니라면 증오의 힘으로라도 버티고 살아내어 퇴각하고, 또 퇴각했던 로비 터너.


#3. 전쟁의 처참함과, 죽음과 상처에 대한 놀랍도록 세밀한 이언 매큐언의 서술. 죽음을 앞둔 프랑스 소년 군인과 그를 돌보던 브리오니의 대화 장면. 영화에선 짧고 무덤덤하게 들어가 있어 약간의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던 그 장면을 책으로 읽으니 마음이 저렸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p.521


#4. 브리오니는 결국 간호사가 되고, 전쟁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돌보면서 통렬하게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인 존재라는 것.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는 존재.'


어린시절 그녀의 실수로 한 순간에 파괴되었던 사람, 관계, 가족, 사랑 이런것들 역시, 쉽게 회복될 수는 없겠지.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니 소설가는 속죄를 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그녀의 표현대로, 속죄가 아닌 망각과 절망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낸 그 해피 엔딩이 사실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반전을 이미 다 알고 읽어야 하는 이 책은,

결말을 미리 알고 읽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지는게 아니라 더 처연하고 슬퍼진다.



Posted by [TK]시월애
|


<편지>

'거짓말' 잘 들으셨죠?

...

1집 활동 이후 이 노래를 기억 속에서 지우고 살았습니다.

그냥 이 노래를 떠올리는 게 서글프고 지루하고 싫었어요.

물론 공식적으로 활동도 없었지만,
간간히 노래 부를 일이 생겨도 이 노래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널 버릴테니, 지난 어두움과 상처를 니가 다 가져가"

그저 그 노래에게 다 떠 미루고,
아무렇지 않게 살라는 주문을 걸어 놓은 것 처럼...

그렇게 긴 시간은 흐릅니다.

돌아서면 뭔가를 잊고
그래서 뭔가를 잃는 나이가 되니

이젠 내가 널 멀리하려는
그 그럴듯한 이유조차
기억해 내기가
참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겨울에 집밖으로 내쫓은 아이를
뒤늦게 찾아 나서는
못난고 미련한 부모의 마음으로

4월 11일 공연에서는
그 덧없음을 부둥껴 안고
흐느껴 울고
미안해 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가슴 한 켠에 평온이 자리 잡기 시작한 거 같아요.

오늘 공연에서는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담담하게 부를 수 있었음 좋겠는데.....

(어땠나요?ㅋ)

앨범과 공연 준비하면서,
많은 분들이 애써주셨는데요..

섬세하고 꼼꼼하게 악보와 편곡을 맡아준 귀요미 박용준님!
세상에나 전곡 베이스 업적을 이뤄주신 귀하디 귀한 Doekee 조동익님!
당근과 채찍식 호된 모니터링과 소리를 예쁘게 다듬어 준 등돌리면남 이종학님!
푸곰 아티스트들을 위해 애쓰시느라 밤잠 못주무시는 단벌신사 푸곰대표 허성혁님!
이번 공연 훌륭한 연주를 해주시는 민재현,이성렬,신석철,이경님!
앨범과 공연에 늘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 주는 안지혜님!
환상적인 조명을 위해 젤 먼저와서 애써주는 박순규님!
항상 내 옆에서 통로가 되어주는 고마운 윤소라님!
오랜만의 공연임에도 선뜻 기획을 감행해준 프라이빗커브 식구들!
음향에 정성을 쏟아준 바인사운드!
오랫동안 함께해온 정다운 우리 보물섬 같은 푸곰식구들
내 오랜 음악 좋아해줌이~ 다음 규호의바다 친구들!

그리고 아빠 엄마 동생 재호, 하늘나라 순애씨 사랑합니다!

오늘 종종 걸음으로 여기까지 와주신 여러분들!
모두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조동진님의 제 앨범에 관해 쓰신 글의 한부분을 공유합니다.


"이 음반의 연주를 들으면, 연주자들이 얼마나 규호를
아끼고 사랑하는지가 느껴진다.
그건 최고의 음악행위이며, 우리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최근 푸른곰팡이에서 제작된 일련의 앨범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래, 여기가 바로 보물섬이다. 어쩔래?

내가 왜 스티븐슨의 보물섬에 나오는 "애꾸눈 잭"이 되어가는지 이제야 알 거같다.

홍보는 젠장...!
보물을 어떻게 홍보 한단 말인가!?
보물은 곡괭이 들고 찾아서 오는 게 보물이지..."


보물섬 등대지기 조동진님~ 항상 감사드리고 건강하세요!


여러분! 오늘 말이죠~

물음표는 접고
마음속 빗장을 풀고
곡괭이를 들고 보물 하나 씩 꼭 캐가시길 바랍니다!


2014.6.7 KYO



지난 주 공연을 마치고, 사랑스런 KYO의 편지.

이번 공연에선 못 만났지만, 가슴 한 켠의 평온함이 언젠간 온 마음 전체로 퍼질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그 평온함을 내게도 좀 나누어 주길 바라며.

언젠가, 조만간, 곧 만나기를. :)

Posted by [TK]시월애
|